반지보다 단풍이 백배는 더 이쁘다.
이삿짐 정리 중 이제 남은 것은 악세사리와 가방이다.
악세사리를 즐겨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딱히 신경쓰는게 귀찮기도 하고
쓸데없이 예민한 접촉성 피부염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딱 맞는 사이즈의 무엇인가는 거추장스럽고 거북하고 피하게 된다.
그것이 속옷일 경우에도 말이다.
크고 넉넉한 것이 최고이다.
반지, 귀걸이, 목걸이, 팔찌나 발찌 중에 그래도 가장 자주 좋아라 하는 것은 반지이다.
그것도 은반지를 선호한다.
금색과 은색 중 원래 은색이 더 끌렸었다.
이유는 딱히 없다만 누런 금 본연의 색이 조금은 촌스럽게 보인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던 것 같다.
원래 경제적인 관념이 부족하다. 금값이 얼마나 비싼데 말인가.
그나마 있던 아들 녀석 금반지와 결혼 때 받은 금반지 등은
IMF 때 남편의 사고와 실직 등으로 팔아버린지 이미 오래이다.
악세서리라고는 심플한 스타일의 은반지 몇 개에
(가느다란 것 몇 개를 바꾸어가면서 같이 끼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결혼반지(차마 그것은 못팔겠더라. 오년전쯤 다시 리세팅하기는 했다만 일년에 한번 정도 낄까 말까이다.)
그리고 시어머님이 아들 낳았다고 주신 진주 반지 정도가 모두이다.
그래도 아무것도 손에 안끼고 집을 나서면
약간 허전해보이기는 하다.
얼마전부터는 얇은 실로 된 팔찌를 몇 개 겹쳐서 끼고 다니는데 절대 빼지 않는다.
그냥 잊어버리고 살다가 가끔 딸랑거리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이다.
<나 아직 꾸미고 살아.> 그런 이미지로 비추어지는게 좋은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발찌는 해본 적도 없다.
이런 성향의 내가 한 때 목걸이를 꼭 하고 집을 나섰던 시기가 있는데 바로 갑상선암 수술을 하고 나서였다.
누가 내 목만 그렇게 빤히 드려다 볼 리가 없는데
자격지심에 그리고 아직은 빨갛게 보이는 수술자국에 마음이 아파서 였을것이다.
동네 금은방에 가서 딱 수술자국 그 위치를 가릴 수 있는 목걸이 두 개를 사서
그날의 옷과 맞추어 깔맞춤으로 목걸이를 하고 나섰다.
하나는 진주 목걸이였고 하나는 은목걸이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목걸이가 바로 수술 부위를 건드리고 땀이 차니 점점 더 간지러워지고 더 붉어지는듯한
역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드디어는 더 이상 목걸이를 할 수 없는 피부 상태가 되어서
오히려 피부과를 다니게 만들었으니
내 수술 부위는 의도와는 다르게 만천하에 공개하게 되어버렸다.
할 수 없이 목걸이를 버리고(누군가에게 넘겼던 것 같다.)
머플러로 바꿔타고서야 금속류 접촉성 피부염이 진정되기 시작했고
그 다음해 여름부터는 <에라 모르겠다. 나 여기 수술했다.>라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목걸이라고는 걸친 적이 없다.
따라서 내 이삿짐속의 악세사리 정리는 오늘 퇴근 후 10분이면 충분하다.
가방도 몇 개 없는데(에코백은 이미 다 세탁 후 정리해두었다.)
시어머님이 주신 가방 두 개와 친정어머니의 가방 한 개가 마음에 걸린다.
도저히 그냥 버릴 수는 없는데
며느리라도 들어오면 건네주고 싶은데
며느리도 없지만 그녀의 취향도 아닐듯하다.
가방도 악세사리도 취향이 천차만별이다.
가방은 며칠 더 고민해봐야겠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게 인생이지만
악세사리가 너무 없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악세사리가 나를 다르게 보여주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고
나를 악세사리로 판단하는 사람은 내가 필요도 없으니 되었다.
살이 빠져서 자꾸 반지가 헛도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다.
이러다가 땅으로 떨어질까 싶어
앞에다 제일 작은 사이즈의 반지를 낀다.
그나저나 엄마가 줬던 금반지는 어쨌을까?
삐뚤어진 노란색 그거말이다.
기억이 도통 나지 않는다.
내 눈에는 어떤 반지보다도
지금 단풍이 훨씬 더 이쁘다만.
반지보다 단풍이 백배는 더 이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