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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골목 투어 네 번째

학생들과의 서촌 나들이

by 태생적 오지라퍼

오늘은 중간고사가 끝난 아이들과 인왕산과 서촌을 둘러보는 생태투어를 진행하는 날이다.

시험이 끝났으니 늦잠을 자고 싶으련만 행사에 참여하는 녀석들이 대견하기도 하다.

사실 어제 시험이 끝나고 낮잠을 실컷 잤다고 조잘조잘 거린다.

서대문역에서 만나 좁은 오르막길을 요리조리 올라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넓은 마당 정류소 앞에 내리면 인왕산 입구가 나타난다.

띵커벨이라는 공유문서를 열어두고 오늘 찍는 다양한 사진들을 공유하기로 안내하고

두명의 전문 강사님(이전 학교에서 함께 근무한 장학사님들이다.)들과 인왕산 초입을 걷는다.

플러깅도 함께 한다고 안내했으나 주변에 쓰레기는 보이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 한강공원에 들렀다가 사방에 놓인 쓰레기를 보고 실망스러운 점이 있었는데 산은 그렇지 않았다.

사실 오늘은 인왕산 등산이 주된 내용이 아니다.

학생들은 생각보다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오르막길을 좋아하지 않는다.

주변을 보고 바닥을 보고 오래 걷는 일은 그들에겐 아직 익숙하지 않다.

옆을 보고 친구들과 눈 맞추고 이야기하는 것이 마냥 좋을 나이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책방이다. (막상 가보니 책방이라기 보다는 카페에 가까웠다.)

산 중턱에서 서울 시내 뷰를 보고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학교에서 보이는 남산이 여기서는 어떻게 보이는지를

서울 시내에 많은 화강암의 근원이 이곳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인왕제색도 그림과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과 박노수 미술관(문은 닫혀 있었다.), 문학가 이상의 근거지가 이곳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곳이 이렇게 많은 역사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라면서 말이다.

아 참 한 녀석이 내려오다가 넘어졌다.

다행히 심하게 다치는 않았으나 조금 뒤부터 무릎이 쑤셔온다고 했다.

걱정말아라.

니 혈액속의 백혈구가 다친 부위를 보호하러 출동한 것이다라고 위로해주었다.

오늘 아침 버섯을 자르다가 왼손 둘째 손가락을 베었던 나는 밴드를 여러겹 붙인 손가락을 보여주며

이제는 혈소판의 작용으로 피가 멈추었다라고 깨알 같은 과학 내용을 알려주었다.

작년 과학 수업 시간에 배운 거라고 다들 기억을 되살렸다.


그리고는 오래된 매운 짜장면 맛집에 갔다.

늘 줄을 서있고 주말에는 예약을 받지 않는 곳이어서 걱정을 했으나 마침 자리가 있었다.

탕수육 작은 것과 매운 고추 짜장, 삼선 짬뽕을 한 테이블씩 시켜주었더니

맵부심이 있는 아이들도 맛있다면서도 매워라 했다.

한참 전 이 짜장면을 먹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짜장면과 비슷하나 국산 매운 고추가 많이 들어있다고 들었다.

오늘은 처음 먹은 그때처럼 맛난 것 같지는 않았으나(음식은 두 번 먹었을 때 더 맛난 것이 진짜 맛있는거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매력적이긴 했다. 세번째 방문할지는 아직 미정이다.

올해 서촌길은 두 번째였다. 둘 다 학생들 인솔이었다.

한때는 근처에 살아서 자주 거닐었던

서촌길의 평일의 고즈넉함도 주말의 분주함도 모두 좋아한다.

건물은 새로 세워지고 식당들도 많이 바뀌었지만 주말에 사람이 많은 것은 여전했다.

다행이다. 계속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잊혀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서촌에서 광화문 뒷길을 거쳐서 다시 서대문역에서 오늘 생태투어를 마무리했다.

오래 걸었으니 늘상 말썽을 자주 부리는 발가락이 괜찮을까 싶었는데 아침에 다친 손가락이 더 불편하다.

키보드 치기가 영 거북하다.

넘어졌던 녀석에게는 괜찮다는 톡이 왔다.

둘 다 그만하니 되었다.

오늘의 행사는 나만의 과학의 달 기념 행사였다. 녀석들에게는 굳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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