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늙지 않는 혼밥 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36

누가 이렇게 아침을 차려주었으면 참 좋겠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어제는 저녁도 먹지 못하고 누웠다.

많이 힘든 한 주는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긴장이 풀린 것인지 몸이 녹아내렸다.

계획대로라면 콩나물국과 마늘쫑볶음을 해두고

글 한편을 쓰면서 금요일 저녁을 즐겼어야 하는데(평소에도 즐기지는 않지만)

집에 오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나는 먹는 것보다 잠자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졸린 눈으로 그 와중에도 부추 한단을 씻어서 부추김치는 담아두고 잤다.

밤에 담아두면 익는데 기다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푹자고 나면 되니까 말이다.

2주전 시장에서 조금 샀던 갓김치와 파김치를 맛있게 먹고 이제 양념만 남아있었다.

아까운 김치 양념이 남으면 부추 김치를 담는게 최고다.

남은 양념을 최대한 쓸어담아 부추에 묻혀주고 고춧가루 등을 조금만 추가하면 새로운 김치가 탄생한다.

물론 이런 비법은 나처럼 적은 양을 담을때만 가능하고 이것이야말로 내 기준에서는 새활용이다.

다행히 푹 자고 일찍 일어나서 어제 못한 대파 듬뿍 넣은 콩나물국과 마늘 함께 넣은 마늘쫑볶음을 했다.

콩나물국 한 그릇은 묵은지와 아침으로 먹고

나머지는 소분하여 냉동실에 넣을 예정이다.

마늘쫑볶음은 용기에 담아두고 후라이팬에 남은 양념에는 밥 한 숟가락을 비벼 먹었다.

남은 양념에 비벼먹는 후라이팬밥이야 말로 맛없을 수가 없다.

만족스러운 아침 식사이다.

이제 냉동실에는 콩나물국, 고추장찌개, 아욱된장국이 있고 제주도에서 산지 직송한 고사리를 넣은 육개장이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문득 든 생각, 나는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사는 것인가?

순서가 뭐가 중요한가, 그래도 이렇게 음식 할 맘이 드는 것은 컨디션이 괜찮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다음 주에는 메인 반찬 하나만 하면 되니 마음이 편하다.

출장에서 돌아올 아들 녀석이 좋아라 하는 메인 반찬은 고기이다.

종류만 바꾸어서 고기를 구워주면 된다.

고기 반찬을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음식해주기 제일 쉬운 사람이다.

지난 주 많이 산 애호박은 새우젓으로 간간하게, 버섯은 간장 베이스로 볶아서

마늘쫑볶음과 함께 3종 세트로 막내 동생과 나눔을 할까 한다.

음식을 해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내가 음식을 아무 생각 없이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은

그리고 그 음식을 맛있게 먹어줄 사람은 이제 막내 동생뿐이다.

음식을 함께, 기꺼이, 편하게 함께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늙지 않는 혼밥 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