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 혼밥 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35
흰 죽과 소고기 장조림 서너 조각
제일 맛있는 음식은 방금 조리된 것이다.
딱 한번만 먹을 만큼 음식을 해서 맛있게 먹자.
냉장고에 한번 들어갔다 온 음식은 맛이 반으로 준다.
제철에 나는 재료로 아쉬울 만큼, 다시 생각날 정도로만 음식을 해서 즐기자.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고 내 생각이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있을 것이다만.
따라서 아들 출장 기간에는 남은 잔반으로 버티고 장도 보지 않는 짠순이가 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이번 출장 기간에는 그냥 마음이 다르고 먹고 싶은 것들이 자꾸 생각났다.
먹고 싶은 것이 자꾸 생각난다는 것은 기운이 부족하다는 내 몸의 신호였다.(지금까지의 내 경험치에 따르면)
완전하게 아프게 되면 먹고 싶은 것은 것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게 되더라.
어제 동네 작은 마트에서 작고 못생겼으나 5개에 2,000원인 애호박, 유명 브랜드는 아니지만 사이즈가 두배 더 큰 두부, 오랜만에 눈에 들어온 아욱 한 다발을 샀다.
장을 보고 나니 고추장 애호박찌개도 먹고 싶고 아욱된장국도 먹고 싶고
샌드위치 싸고 남은 참치를 두부와 함께 간장과 고춧가루 뿌려 자작하게 조려 먹고 싶기도 하였다.
그러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다 생각을 바꾸었다.
애호박찌개와 아욱된장국을 끓여서 한번 먹을 만큼만 먹고 나머지는 냉동시켜두기로 말이다.
남들이 다 하는 쉬운 그 방법을 써보기로 말이다.
많은 양 음식해서 소분해서 냉동시키고 필요할때 꺼내 먹는 신공을 써보기로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받아들여 음식 보양을 취해보기로
이 시기에 휴식과 섭식을 잘 못하면 크게 아프게 되던 나의 질병 루틴을 끊어보기로 말이다.
아예 아프게 되면 입맛은 하나도 없으나 오로지 약을 먹기 위해서 억지로 밥을 먹게 된다.
밥알 씹기도 힘들다는 말의 뜻은 이미 몇 번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골골하고 저질 체력이고 조금 조금씩 기능이 모자랐다.
어렸을 때 엄마는 내가 아플 때마다 흰 죽을 끓여주셨다.
흰 죽에 소고기 장조림을 손으로 찢어서 몇 조각 주시고
쓴 약을 먹은 후에는 보상처럼 달달한 복숭아 통조림 한 쪽을 입에 넣어주셨더랬다.
몸은 아픈데 나만 별식을 먹는 듯한 기분.
안 아픈 동생들은 흰 죽과 장조림을 먹는 나를 부러워했더랬다.
흰 죽 끓이기에 시간과 노력과 집중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들 녀석이 열이 펄펄 날 때 직접 끓여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요새는 클릭 한번으로 전복죽, 삼계죽, 호박죽들을 배달받아 먹을 수 있지만
코로나19로 많이 아팠을 때도 나는 흰 죽만 줄기차게 배달시켜 먹었더랬다.
흰 죽에 다른 것을 섞으면 그것의 냄새가 거슬리게 된다.
정말 많이 아플 때는 냄새도 역겹고 힘이 든다.
내 코만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닐게다.
아마 우리 엄마는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마도 엄마도 엄마의 엄마에게 그 비법을 배운 것은 아닐까?
아들 녀석은 아플 때 흰 죽보다 전복죽을 더 좋아하는 것을 보니
나를 꼭 빼다박게 닮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