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음식이 최고이다. 자고로.
날씨가 메뉴를 알려준다.
자고로 제철 메뉴란 것이 있는 법이다.
어렸을때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없었던 시기였으니 그냥 있는 것 주어지는 것을 마구 먹었을 때이고
(그런 전투적인 식사가 나를 뚱뚱이로 만들었을게다.)
아들 녀석을 키울때는 철저하게 아들 녀석 식성과 건강에 맞춘 식단 위주였고(그래도 키 큰 아들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이제야 외할머니와 엄마가 드셨던
제철 메뉴의 큰 뜻을 이해하게 된지 얼마되지 않았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하고 싶은 것보다 해봐야만 할 것들이 더 많다.
먹어보고 싶은 맛난 것은 더더욱 많다.
이런 내가 아직도 구분이 잘 되지 않는 식재료는 <시래기와 우거지>이다.
시래기는 무청을 사용하고
우거지는 배추의 겉잎을 사용하고
시래기는 햇볕에 말려서 건조시키는 반면
우거지는 삶거나 데친 후 바로 사용하거나 보관한다는 원천적인 차이점은 이해했으나
시래기를 넣은 감자탕인지
우거지를 넣은 감자탕인지는
푹 익어서 그런지 별 맛의 차이를 못 느끼고
매번 헷갈린다는 점이다.
커피 맛을 못 느끼는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요 시기쯤 시래기나 우거지가 급 댕기는 현상이 언제인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학생들과 텃밭을 할 때는 배추와 무를 수확하고 시래기나 우거지를 활용하기도 했었다.
맛나고 쓸모있다고 이야기해도 학생들은 절대 무청과 배추 겉잎은 안가져간다.
다행이다. 이 맛나고 영양 많은 것들을 버려주다니.
그렇게 내 몫이 된 무청을 잘 씻어서 잘게 잘게 자르고 비빔밥에 넣어먹던가
아니면 말려서 시래기무침이나 볶음을 해서 먹던가(양파와 함께면 단맛이 쏠쏠 난다.)
우거지는 된장국으로 끓여먹던가 아니면 겉절이로 활용하거나 했었다.
그러니 요 몇 년 동안 이 시기에 맛보았던 별식이라 뇌가 그리고 혀가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제 야채 가게에 시래기가 하나 있길래 얼른 들고 왔는데 양이 너무 많기는 하다.
오늘 아침 시래기 감자탕을 끓였다.
어제 일이 있다고 나간 남편이 저녁 시간이 되어도 들어오지 않아서 걱정을 하고 있었다만
(무소식이 희소식 주의자인지라)
9시 반쯤이나 되어서 들어오면서 지레 화를 낸다.
내가 늦었다고 구박할까봐 입을 막으려는 처사이다.
참 얄궂다. 아픈 사람이고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어야하는 사람이 늦게 와서는 먼저 툴툴대고 있다니.
막내 동생말로는 그 시대의 남자들이 언어를 잘못배웠단다.
제부의 말로는 그 시대 아무것도 안시키고 애지중지 키운 K-장남 육아법의 산물이라고도 한다.
둘 다 개연성은 있다만 그 시대의 남자 마인드도 아니고 딱 우리 아버지 시대 남자 마인드이다.
참 답답하다.
저녁은 무엇을 먹었냐 물었더니 더 툴툴댄다.
3만원짜리 보리굴비 정식을 먹었는데 보리굴비에서 냄새가 났다했다. 그럴 수밖에.
보리굴비는 더운 온도에서 바짝 말릴수록 맛이 나는 것인데
지금은 그렇게 바짝 말려질 날씨 컨디션이 아니지 않나.
그러니 눅눅하고 비린내가 잡히지 않고 제 맛을 내지 못한다.
이래서 음식마다 가장 맛난 시기가 있는 법이고
내 기준에서 제일 맛난 음식은
고가의 음식보다도 딱 맞는 제철음식인 셈이다.
얼마전 굴국을 맛나게 끓여 먹었고
오늘 시래기 감자탕도 끓여두었고
남편이 또 먹고 싶다고 부탁한 꽁치김치찌개도 끓여두었고
아침은 호박, 버섯 구워서 어제 학교 푸드전공이 운영하는 마트에서 산 샐러드와 함께 먹으면 될 듯 하다.
적당한 가격과 영양소가 함께 어우러진 멋진 레시피이다.
그나저나 시래기 양이 너무 많은데 어쩐다냐.
얼려둘까? 얼렸다가 먹으면 어떤 먹거리라도 맛이 반은 훌쩍 떨어지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만.
그래도 먹을게 많으니 조금은 행복한 주말 아침이다.
곧 아침만 차려주고는 곧 서울 골목 탐방에 나설 예정이다.
이번 주말이 지나면 영하의 추위가 몰려온댄다.
기다려라 대문사진속의 골목아. 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