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 추위는 거뜬하다.
사방에서 춥다고 해서 단단히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선다.
두 달을 버텨야하는 혈압약과 콜레스테롤약을 받아와야 한다.
두 달마다 시한부 인생을 연장하는 듯하다.
그래도 그것이 어디냐 건강 관리와 추적 검사를 하는 계기가 된다.
특히 이번에는 6개월만에 혈액검사도 지난주에 했었고(알레르기 이슈 때문에 갔었다만)
주치의 삼은 병원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어젯밤부터 혈액 검사 결과가 약간 무섭고 걱정되기는 했다.
주위에 혈당이 높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등장하기도 했고
발가락에 쥐가 발생하는 것이 전해질 이상인가도 싶었기 때문이다.
춥다고 하니 검은색 패딩바지(거의 스키장 바지 스타일)를 입고
기모 들어간 블랙 계열의 맨투맨 티를 입고
거기다 또 검은색의 패딩을 걸치고
후배가 보내준 마스크와 목도리 겸용을 얼굴에 두르고 나니(이것도 검정색이다.)
올블랙 패션이 완성되었다.
남편에게 마스크와 목도리 겸용을 보여줬더니(보온 효과가 좋아서 하나 장만해주려고)
시크하게 강도같아서 싫단다.
검은색이면 다 강도 패션이냐?
정말 패션의 패자도 모른다.
내가 어딜봐서 강도 얼굴이냐?
커다랗게 꿈뻑이는 눈동자가 있는데.
그런데 신발을 신으면서 거울을 흘낏 살펴보니 올블랙으로 치장한 내 패션이 과하기는 조금 과하다.
바지라도 회색으로 바꿔 입을까 하고 잠시 생각했으나
갈아입기도 귀찮고 특별히 만날 사람도 없고
누가 내 패션을 관심있게 보겠냐싶어
추위를 막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추위 앞에 패션은 없다.
혈액검사 결과를 걱정하는 내 마음까지 담아서 검은 마음 가득 을지로로 향했다.
을지로의 은행나무는 <부익부 빈익빈>이다.
어느 나무는 아직 잎이 꽤 달려있고
어느 나무는 휑하다.
다행히 검사 결과에는 이상이 없었고 약도 받았고
그러고 났더니 추위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고(신기하기도 하다.)
서울 시내 산책에 대한 마음이 조금 떠오르기는 했으나
주말 산책으로 인한 다리 근육 뭉침이 느껴지는 듯하고
내일의 힘든 일정에 대비해서 빨리 귀가하는 것을 택했다.
내일은 두 시간짜리 강의가 총 3개이다.
집에 오는 길에 세일하는 팝업 스토어에서
국자와 뒤집개 그리고 패션컵, 베개 커버를 사면서
이사를 빙자하여 생필품을 새로 바꾸는 내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긴했다만
혈액검사 이상이 없는 것을 자축하는 의미로 그 정도는 질러도 된다고 다독인다.
5시 퇴근하고 집에 들린다는 아들 녀석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리스트를 작성해본다.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의도이다.
오늘 다녀가면 언제 올지 알수 없는 금손 아들 찬스이다.
- 인터넷 이전 설치 신청하기
- 새로 산 수동 청소기 쓰레기 비우는 법 배우기
- 꽉 닫힌 오이피클 뚜껑 열기와 꼬다리가 떨어져나간 참치캔 처리하기
- 고양이 배설기 새로 산 것 조립하기
- 고양이 캐리어 두 개 살펴보기
- 기타 등등 오만가지 일
아들이 해줄 수 있는 일들이 이렇게나 많다.
특급 알바인 셈이다.
맛난 저녁을 먹이고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시키고 수당을 넉넉하게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