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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역 지하세계는 오묘하다.

어디든 그곳만의 질서가 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다시 이른 출근길이다.

월요일은 이번주부터

금요일은 다음주부터는 이른 출근이 필요없다만

수요일은 종강주까지 주구장창 이른 출근이다.

그래서 일주일은 가운데에 수업을 배치한것이다만

옳은것이었나는 잘 모르겠고

여하튼 다음 학기는 공휴일들을 고려한

전략적 강의 시간 배치를 다짐하고 있다.

어제 대학교 이제 종강한거 아니냐고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전화한 지인이 있었다.

그랬으면 참 좋았겠다만 꼬박 한달 남았다.


이 시간의 잠실역 지하에는 사람이 엄청 많아

외롭거나 무섭거나 갬성에 빠질 틈은 없다.

다행이다. 나 혼자만 덩그러니 있는 지하세계는 블랙홀이나 다름없다.

오늘보니 노숙자들에게 드디어 종이박스가 등장했더라.

기온이 내려갔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드문 드문 문을 연곳은 편의점과 커피 매장

그리고 김밥과 오뎅집이다.

첫날은 편의점 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제는 제법 여유롭게 지하세계를 관찰

진미채 김밥, 멸치 김밥, 소불고기 김밥을 하나씩 포장한다.

손가락 길이의 미니 사이즈라 내게 딱이다.


여러 출구의 중간쯤 놓인 의자에는

친구끼리의 여행에 들뜬 노년들과

그곳에서 허공을 보며 혼잣말을 해대는 사람과

이른 줄근길에 지쳐보이는 사람들이 그룹별로 앉아있다.

조금 지나 광역버스 탑승장으로 넘어오면

각각의 목적지를 기다리는 또 많은 아침형 인간들이 있다.

나와 비슷한 유형이라 반갑기만 하다.


이제 글을 쓰던 의자에서 일어나

(늦게 일어난 아침이다.)

셔틀버스 탑승장인 외부 세계로 나갈 시간이다.

외부 석촌호숫길에는 지하세계와는 180도 다른

멋진 러너들의 세계가 기다릴것이다.

그리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버스를 기다리는 화려한 색감의 옷을 입은 많은 단체들이

하하호호 기다리고 있을것이다.

나는 두 세계의 접점을 관찰자 시점에서 즐기는 또다른 부류이다.

나 빼놓고는 없는것 같다만.

그리고 잠실역 지하세계의 질서와 일상을 볼 날도

그리 오래남지는 않았다.

이사 날자는 뚜벅뚜벅 다가오는 중이다.


(셔틀버스는 지나치게 따뜻하다. 난방 냄새로 멀미가 올라오려 한다. 숙면은 틀렸다. 몽롱한 정신으로 휴대폰 사진 갤러리 정리하려한다. 이삿짐 물건만 정리해야는건 아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옛날 휴대폰을 왜 안버리는것이냐. 역사란다. 신개념 앨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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