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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을 퍼지게 자고 싶다만.

그것도 내 맘대로 못하다니,

by 태생적 오지라퍼

왜 몸이 힘들고 다리가 무거운 것은 분명한데 낮잠이 오지 않는거냐?

어제 힘든 하루를 보내서 당연히 오늘은 푹 쉬고자 계획하였고

남편 아침밥을 차려주고는 다시 자보려고 1차 시도를 하였으나

잠이 들어가려는 순간 남편이 일을 보러 나간다면 이야기를 해서

배웅을 하고나니 잠이 다 달아났다.

원래 잠이 오다가 달아나면 다시 오지는 않더라.

오전 산책을 마치고 점심 라면 정식을 끓여먹고 나서 2차 낮잠 시도를 하였으니 또 실패하고 말았다.

세상에나 그 잠꾸러기 내가 낮잠을 못자다니.

눕기만 하면 자고.

자고 자고 자도 잠이 제일 좋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나다.

차에서는 원래 잘 못잤었으니 그렇다고 쳐도

집에서 남편도 일이 있다고 나간 편한 이 시간에

왜 낮잠을 못자는 것이냐?

답답하기 그지 없다.

내 답답함을 놀리는 듯 고양이 설이는 낮잠중이다.


할 수 없이 이사하면서 버리고 갈 것들을 언제 신청하면 좋을지 경비실에 문의하고

(당일날 다 내놓고 연락하란다. 추가 가능성이 다분하니. 아마 그럴 것이다.)

우체국 볼일을 하나보고(피부 간지럼증으로 병원간 것 실비 보험 신청 서류 발송이다.)

이곳으로 이사 와서 종종 나의 산책과 오이지와 고수, 미나리 등의 구입처였던 전통 시장과도 마지막 인사를 하고(노점상 할머니는 뒷통수만 보였다.)

최근 생긴 지하철역에서 직접 연결되는 제법 큰 몰에 가서는

이사맞이 새 기분을 위한 식탁 매트, 화장실 변기청소 솔 세트, 내가 좋아라하는 우드 수저 세트

그리고 겨울용 실내복 바지 두 개를 샀다.

무거운 다리 컨디션을 고려하여 10,000보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걸었으나

중간에 한번 오른쪽 발가락에 쥐가 살짝 나려는 느낌이 들어서

야옹 야옹을 다섯 번 외치고 꼼지락 거렸더니 괜찮아졌다.


얼마전부터 신용카드 하나가 마그네틱 이상인지

영 인식이 안되어서

오늘 귀갓길에 해당 은행에 들러서 재발급 신청을 했다.

이사 가기 전 현안들을 모두 처리하고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다행이 다음 주면 새 카드를 받을 수 있을 듯 하고

그 사이에 사용하지 않았던 포인트를 현금으로 계좌에 입금하는 오래된 일도 처리하였다.

아까 쇼핑한 금액이라 얼추 비슷하다.

오호. 오늘 쇼핑을 공짜로 한 것 같은 기분은 무엇이냐?

내가 셈에 이렇게 둔감하다.

이제 남은 것은 방향제(남편의 고유한 냄새를 잡는데 꼭 필요하다.)와

세탁세제(지난번 것이 작은 사이즈라 더 필요할 듯 하다.) 구입과 배송

그리고 30% 세일 쿠폰이 날라온 로션만 구입하면

다 되는 것 같다만

놓친게 분명 있을 것이다.


버리고 갈 것의 리스트를 작성해본다.

식탁, 식탁의자(이것은 도저히 사용이 불가능하다. 설이 발톱이 만든 작품이 난해하게 표현되어 있다.)

근처에 지인이 있다면 무료 나눔이라도 하고 싶은 아직은 쓸만한

삼단 서랍장 2개, 검은색 스틸 스툴이 제일 큰 사이즈의 가구이다.

기타 주방기구는 분리수거할 때 버리며 될 것들이고(냄비, 후라이팬, 찜기, 수저, 그릇 등)

고양이 배설물 처리기는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새로 샀으니 쓰던 것은 버리고

세탁세제 놓아둔 플라스틱 보관통은 처음부터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버리고

조리도구 보관통, 설거지 건조대도 버릴 예정이다.

노란 스티커를 붙여두었다.


생각보다 산책할 때에는 날이 춥지 않았는데

이 글을 쓰면서 거실 창으로 보이는 밖은 바람이

꽤 있다.

오늘부터는 이제 서울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걷는 산책길이 될 확률이 높다.

한번씩 천천이 걸어가면서 주위 식물과 건물들에게 나만의 작별 인사를 나눈다.

잘 있어라. 언제 다시 올지는 모른다.

다시는 못올지도 모른다.

그동안 나의 산책길이 되어주어 고마웠다.

그런데 이렇게 산책을 하고 집안일을 했다만

아직도 낮잠이 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부터 푹 한숨 자고 일어나서 명료하고 깔끔한 컨디션으로 탄소중립연구 일을 진행하고 싶은데 말이다.

낮잠마저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다니.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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