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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에 든 오만가지 생각

횡설수설 하루가 간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마음이 복잡할 때는 몸을 쓰는게 국룰이다.

설거지, 저녁 국 끓이기, 점심 도시락 준비하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쓰레기 분리수거하기,

큰 맘 먹고 대형 테이프로 고양이 물건에 묻어있는 설이 털 제거하기 등등등.

이렇게 계속 몸을 움직여도 시간은 천천이 간다.

강의하는 시간은 빠르게 가

즐겁게 노는 시간은 더 빠르게 가는데

왜 무언가를 준비하고 대기하는 시간은 그리도 안가는 것일까?

그래서 억겁의 시간이라는 표현이 있나보다.

도통 이해가 안된다.

느릿느릿 가는 시간을 오랜만에 경험한다.


삼십여분의 시간이 남으면 무엇을 해야할까?

날이 괜찮다면 물론 산책이다만

산책을 하기에는 감기도 무섭고 날씨도 썰렁하다.

이럴 때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을 추스르는 곳으로는 카페가 딱이다만

커피를 먹고 싶은 생각은 딱히 없다.

지난번에는 그래서 정말 한 모금만 먹고 그대로 놓고 나왔는데 뒷통수가 약간 따가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오늘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연구 자료를 검토하면서 홀짝홀짝 열 모금은 마셨다.

나에게는 어느 카페이든지 커피양이 너무 많다.

1/2만 팔았으면 참 좋겠다.


막내 동생에게 기다리던 소식이 왔는데 들어보니 별별 일이 다 있다.

이제 크게 놀라지도 않는다. 그러려니 한다.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의 일들이다.

사람 사는 방식은 천차만별이지만 깨끗하게는 살았으면 좋겠다.

생뚱맞게 무슨 소리냐 하겠는데 이사갈 집 이야기이다.

집이지 쓰레기 처리장이 아니지 않는가?

참 이상도 하다.

더러운게 좋은 사람은 없을텐데 말이다.

내가 근래 본 제일 깔끔한 취향의 사람은 내 옆자리 사수 교수이다.

젊은데 엄청 깔끔하다. 그러기 쉽지 않다.

흔하지 않은 케이스이다.

차와 빵을 먹고난 유리탁자를 유리세정티슈를 사용해서 깨끗이 닦고

창문밖으로도 손을 내밀어 유리창을 닦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정도는 아니래도 우리 상식선은 지키자.


금요일 오후 강의는 인원수가 적어서 가족적인 분위기이다.

따라서 다양한 추가 활동을 운영한다.

어차피 클라스별로 성적이 나가니 추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늘은 수질검사와 혈흔반응검사를 두 개조로 나누어서 진행하였고

원래 실험 매뉴얼에 과학적인 상상력을 추가하여 창의적인 실험까지 진행하였다.

이런 활동을 하면 개개인의 성향과 취향을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아마도 금요일 오후 강의 듣는 학생들과의 친밀도가 제일 높을 것이다.

그러니 과밀 과대 학급이나 학교에 보내는 것이

그리 좋은 것이 아님을 기억하시라.

나의 마지막 두 학교가 소규모 학교여서 참으로 행복한 마무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일수도 있다.

오늘은 마지막 학교의 내 업무였던 축제날이다.

오늘 축제를 보면서 중 3 친구들이 나를 기억해주기를 조금은 바라는 그런 묘한 마음도 들었다.


오늘 하루. 마음이 오락가락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알고 있다만 이곳에 속속들이 쓰기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그래도 이 정도로 마무리되었음에 감사한다.

아프지만 않으면 다른 것은 다 조금씩 점진적으로 정리해나갈 수 있다.

나의 지속가능성과 문제해결력과 은근과 끈기와 회복탄력성을 믿어본다.

제일 중요한 체력은 그다지 믿을 수가 없다만.

(후배가 보내준 일몰 사진은 오만가지 생각을

한순간에 잊어버릴만큼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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