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번의 여행2
조금은 달랐던 두번째와 세번째
두 번째 여행지는 그 주변에서는 가장 환경이 좋은 학교이었습니다.
지금도 학업에 대한 열성이라고 하면 첫 번째로 손꼽히는 그곳의
반짝반짝 하다 못해서 부럽기까지 한 아이들을 보면서
첫 학교 아이들이 오버랩 되는 잔상이 오래도록 남았었습니다.
공부하라는 이야기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집에서 공부 압박을 받고 있었던 그들에게는
오히려 학교에서의 작은 쉼과 힐링이 필요했습니다.
망원경으로 천체 관측을 하고
운동장 구석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과학실에서 모두에게 생애 최초인 김장을 담고
피구대회를 위해 입안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연습을 하며
대학교 응원가를 열심히 연습해서 체육대회에서 히트를 치고
서로가 서로의 멋진 앞날을 응원해주며 함께 성장하던
지금은 누구보다도 멋진 사람들이 되어 있는
두 번째 여행지는 그렇게 나에게 반짝거림과 기쁨으로 남아있습니다.
세 번째 여행지에서 나는 교사로서의 벽에 부딪히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사이다병에 소주를 숨겨 와서 아침 조회 시간에 나누어 먹는 아이들(물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만)
노래방에서 새벽까지 놀다가 학교에 안 오고 자고 있는 아이들(학교에 와주는 일이 고맙기만 했습니다.)
수업 중에 큰 소리를 지르며 아들을 찾으러 오던 술 취한 부모님(다들 나름의 어려움이 있으셨습니다.)
이런 암담한 상황을 만날 때 마다
마구 흔들리는 나의 마음속에서는 실망과 안타까움이 교차하곤 했습니다.
공부는 해서 뭐하나, 집에 돈이 하나도 없는데,
당장 먹을 것도 없는데, 나는 오늘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내일을 위한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나 나에게 내일이란 없을 수도 있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는 그들에게
실질적인 힘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했고
기울어진 운동장인 사회가 불편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가기를
그러면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믿음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을 이해해보고자 더 노력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그래서 더 슬픈 세 번째 여행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