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조금은 다른 구정 보내기

비슷하지만 다른 날들

by 태생적 오지라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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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은 이번 구정에는 제사를 지내지 말자 하셨다.

올해 본인이 컨디션이 안좋으시다면서... 그 통화가 구정 10일쯤 전이었다.

동서랑 통화하면서 서로 한 끼 먹을 만한 음식을 준비해오자고 했다.

그때는 제사 음식을 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구정이 다가오면서 혹시 싶어서 관성 때문인지 습관 때문인지

조금씩 한 접시만큼 제사 음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사는 안 지내도 식사할 때 먹으면 되니까.

처음에는 동태전과 소고기 동그랑땡만 할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나물 3종 세트를 추가했다. 콩나물, 시금치나물, 고사리나물... 남으면 시금치는 김밥에 넣고 고사리는 소고기 빨간 육개장을 끓일 때 넣으면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다음 날은 냉장고를 정리하다 당근과 양파를 볶으면서 조금 남은 당면을 발견해서 급 잡채를 시작하고, 두부를 굽고 호박전과 아들이 좋아하는 양파전을 하고 집 앞 식당에서 갈비찜을 포장하는 것으로 2023 구정 음식 준비는 마무리되었다.

제사를 지내고 나서 시어머님은 이제 제사를 그만 지내자고 공식 선언하셨다. 결혼하고 35년 동안 지내던

제사가 마무리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이렇게 쉽게 마무리 될 수도 있나 싶었지만 나는 재빨리 제사상을 사진 찍어 두었다. 이제 명절 전날에도 맘 편히 쉴 수 있겠구나가 기쁘기만 했다. 그리고 나보다 더 좋아하는 건 하나뿐인 아들 녀석이었다.

구정 휴가 기간은 나의 요리 역량이 가열 차게 높아진 기간이었다.

구정 전 날 제사 음식을 하면서도 특식이 먹고 싶었다. 아침은 잡채를 준비하다가 남은 소고기, 당근, 양파 볶은 것들을 넣어서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가 싫어하시는 밍밍한 잔치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는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면서 시큼한 가지나물과 우리 집에서만 제사 후에 먹었던 콩나물장조림을 만들었다. 콩나물장조림은 제사 지내고 먹고 남은 생선뼈들을 모아서 콩나물을 넣고 간장으로 진하게 국물을 우려내는 것이다. 이후 나는 어디서도 이것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엄마 생각을 하고 콩나물장조림을 하면서 그리고 그 콤콤하고 꼬릿한 것을 먹으면서(아들녀석은 이게 무슨 맛이냐면서 질색을 했지만) 나는 조금씩 훌쩍거렸다. 겉으로는 이효리가 해외로 입양 보낸 강아지들을 만나러 가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슬퍼서 우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나서 흐르는 눈물이었다.

다음 날은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소고기 고사리 육개장을, 또 그 다음 날은 어머니가 가끔 별식으로 끓여주시던 오징어 무국을 – 어머니는 해산물을 싫어하셨다. 냄새도, 손질도 쉽지않아서였을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 이렇게 돌아가신 부모님을 음식으로 기리는 명절을 보냈다.

먹거리로 기억되는 부모님. 뭐든 엄마가 해준 게 제일 맛있다는게 진리다. 아들 녀석도 과연 그럴까? 그것은 의문이다. 이 글을 쓰고서도 나는 계속 먹을 것에 집착 중이다. 몸을 만든다고 단백질을 운운하는 아들을 핑계로 굴을 사왔고 삼겹살 수육거리를 해동시키면서 이 글을 쓴다. 배가 답답하고 소화가 안 되는 이유가 이거였는데 원인을 딴 곳에서 찾고 있었다. 연휴가 끝나면 더 이상 먹을 것에 집착하지 않게 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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