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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화와 일몰의 순간

자연이 그려주는 그림

by 태생적 오지라퍼

이사 와서 퇴근 운전길에 일몰을 만나게 된다.

겨울이라 해가 일찍 져도 너무 일찍 진다.

오후 다섯시만 되면 일몰이 시작되고

퇴근길에 꼴딱꼴딱 넘어가는 태양을 바라보고

운전을 하느라 선글라스를 저절로 찾게 된다.

동양화 중에 수묵화같은 풍경을 계속 지나다가

(봄이 되어 산에 들에 꽃이 피면 갑분 서양화로 변신할지도 모른다.)

다섯시가 되면서부터는

다양한 색감의 붉은 색 향연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언뜻 언뜻 건물과 나무들 사이로 태양이 넘어가면서 보여주는 색들이다.

빨간색의 스펙트럼이 이렇게 다양한가 싶다.

일몰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본 경우는

일생에 몇 번 되지 않는 듯 한데

요새 특별한 이사 기념 선물을 받는 기분이다.

어떤 그림으로도 어떤 사진으로도

이 느낌을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만

신호에 걸렸을 때 사진을 한 장 급히 찍어보았다.

오늘의 대문 사진이다.


유럽에 3주 정도 연수를 갔었던 시기가 있었다.

11월 중순이었는데 이미 유럽의 길거리는

뱅쇼와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분위기는 연말이었고

숙소에 난방이 빵빵 나오지 않아서

추위를 꽤 느끼는 날들이었는데

무엇보다도 그 기간 동안 반짝하는 햇빛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나의 기분을 저조하게도 했다.(음식이 차갑고 맛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만.)

나는 유럽에서는 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비오는 날도 눈오는 날도 흐린 날도 싫어하고

오로지 해가 반짝하는 날을 좋아라하는 성향 때문이다.

아무리 멋진 독일의 고성도 파리의 멋진 언덕도

또 웅장하기까지한 성당도 그렇게 멋지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 뒷 배경으로 반짝 반짝 해가 있었으면

감흥은 두배 쯤 올라갔을 것이다만.

해가 나오지 않아 많이 당황스럽고

상실감에 시달린 연수 기간이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 운전을 하다가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고는 눈물이 비질비질 쏟아졌었다.

좋아서나 기쁨의 눈물이 아니고

유럽의 햇빛에 적응된 내 눈의 조리개가

갑자기 많은 태양빛을 감당하지 못하여 흘리는 부작용의 눈물이었다.

결국 대학병원 안과진료까지 보고서야

눈부심과 눈물과 눈의 미세한 통증을 떨치게 되었었다.

그 정도로 유럽의 11월은 해가 없는 날들이었다.

그때만 그랬던 것일지는 모른다.

나는 딱 한번 유럽을 가봤다.


반대로 미국에서의 한 달 연수에서는

엄청 강한 햇빛을 만났다.

피부가 구리빛으로 변하는 것은 두렵지 않았는데

강한 햇빛으로 눈이 부시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눈알이 타들어갈것만 같은 느낌도 들었다.

차량 조수석에 앉았을때는.

그곳에서 나는 선글라스가 멋지게 보이려는 장식품이 아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미국 사람들이 왜 눈에 혹은 머리에 선글라스를 올리고 항상 지참하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미국과 유럽은 내 시각에서는 이렇게 큰 차이가 있었다.

순전히 햇빛량으로 본다면 미국의 압승이다.


이제 다음 주 금요일이면

이번 학기 대단원의 종강일이고

월, 목, 금은 일몰 시간쯤 퇴근을 하게 되므로

아직 적어도 세 번은 수묵화인데 빠알간 일몰 부분이 선명한 태양의 작품 세계를 더 감상할 수 있겠다.

서울이 아니어서 뻥 뚫린 도로라서 가능한 뷰다.

힘든 장거리 운전이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 생각하련다.

물론 엉덩이는 조금 아프다만.

어느 작가가 이런 멋진 작품을 보여주겠냐.

자연보다 더 멋진 작품은 없는데

그걸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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