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시간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고마울뿐.
아침을 먹고 있는데 남편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벨소리를 못듣고 끊어진 이후에 발견을 했는데
어제 45분이나 통화한 친구란다.
남편이 현재 항암중이라고 밝혔는데도
굳이 중요한 안건도 없는데
자신의 신세 한탄을 무려 45분이나 했다한다.
세상에나. 항암중인 사람보다 더한 신세 한탄은 뭐가 있을까?
강남 자가에 살고 은행에서 정년퇴직한 A씨.
그러는거 아닙니다.
나 같았으면 슬며시 핑계를 대고 진작에 끊었을텐데 남편은 나에게만 모질다.
친구들에게는 세상 이렇게 착한 사람이 없다.
다음부터 그렇게 오래 통화해서 진을 빼놓으려면 합당한 수고료를 지불받으라 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 금융 치료라고도 말해주었다.
어제 저녁 먹으면서 동생과 제부와
대학원 시절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 교수님의 어떤 심부름까지 해봤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개인적인 은행 심부름이나 서류 받으러 대신 출동하는 것, 시험감독 대신 들어가는 것 정도는
그 당시에는 애교 수준이었고
제부는 못먹는 오소리 순대국을 교수님과 겸상해서 먹어야했을때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나는 딱히 석사는 학교 다니면서 해서 바빴고
박사는 나이를 먹을대로 먹어서 다녔으므로
교수님들이 심부름을 시킬 군번이 아니었었다.
다행일지도 모른다.
박사과정때 받은 성적우수 장학금을 교수님이
다른 학생과 나누어 쓰라하셔서
그것은 그냥 말없이 따랐던 기억만 있다.
(약간 속상하기는 했다만)
사실 석박사과정과 지도교수님과는 위계 관계이고
평생을 봐야할 같은 분야 소속이기 때문에
웬만한 갑질은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요즈음 문제가 되는 연예인과 매니저 사이와는
많이 다르다만
심심찮게 대학가에서도
갑질에 대한 성토와 비난이 이어지고 있는데
아마도 새발의 피 정도 수준일 것이다.
어느 관계에서건 무슨 사정에서건 갑질은 안된다.
무엇이든 갑질이라고 느끼는 그 순간 기분이 너무 더러워진다.
나도 물론 몇 번 당해봤다.
주로 그 대상은 교장, 교감 선생님이었다.
어느 집단이건 그런 사람은 꼭 있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갑질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시켜봤자 일이 진행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간과 노력을 공짜로 이득을 취하겠다는 생각이 갑질의 발로이다.
정중히 부탁하고 그 시간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수당을 지급하면 된다.
넉넉히 주면 더 좋아라 할 것이다.
왜 자신의 시간과 노력은 그리 소중하면서
다른 사람의 것은 하찮게 생각하는 것이냐?
남들도 나만큼 소중한 존재이다.
나처럼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시간 약속을 잘 안지키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나에게 기꺼이 시간을 나누어주는 사람은
고맙기만 한 사람이다.
(오늘 이천호국원에서 부모님을 뵙고 나오는데
아직 낮달이 보였다. 달에게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