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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병이 숨어있었다.

재부팅이 되는 삶이면 참 좋겠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장거리 운전만 잘하면 오늘 하루가 해피엔딩일 줄 알았으나 그렇다. 복병이 숨어 있었다.

집에 와서 중요한 파일 하나를 17시까지 업로드하기로 했었고

집 도착 시간은 16시 안되어서였으니

시간은 넉넉하고 파일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이었으니

그 건이 복병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1도 하지 않았다.

기분좋게 귀가하여 고양이 설이 츄르도 주고 엉덩이도 두들겨주고

남편에게 저녁은 닭볶음탕과 야채 샤브샤브 중

어느 것을 먹겠냐고 친절하게 물어보고

(물로 밀키트를 사 둔 것이다. 내가 다할 여력은 없는 이번주이다.)

선택받은 닭볶음탕 밀키트를 냉장고에서 꺼내두고

옷도 갈아입고

이제 파일을 업로드해야지 하고 노트북앞에 앉았더니

노트북이 먹통이다.

꺼지지도 진행도 안되는 상태이다.

아침에 브런치 글을 쓰고 나갈때까지만 해도 멀쩡했었는데 말이다.


갑자기 침이 마르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 노트북 안에 파일이 있으니 핸드폰으로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사진을 찍어보내야하니 약간은 때깔이 나지 않고 구차스럽다.

남편 노트북을 써볼까했더니 그 노트북은

인터넷 연결이 되었다, 안되었다 한단다.

그게 무슨 말인가? 도통 알수가 없다.

막내 동생 방에 있을 것 같은 노트북을 써볼까했더니

서울집에 가면서 가지고 갔다 한다.

이제 노트북을 복구하는 방법밖에 없을 듯 하여

아들 녀석에게 사진을 찍어 톡을 보내고 전화를 했지만 회의 중이라 통화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팁은 주었다. 꾹 오래 눌러보라고.

이미 여러차례 써본 방법인데 뭘 그딴 것을 알려주냐 싶었는데 다른 방법은 없다.

할 수 없다. 마지막 방법을 써본다.

심호흡을 하고 노트북에 연결된 모든 전선을 다 뽑고 5분을 기다린 후

기도를 하면서 전선을 다시 연결한다.

그리고 전원을 꾸욱하고 내 온 힘을 다해

오래 오래 눌렀다.

이제 되려는 조짐이 보인다.

물론 기도의 힘은 아니다.

그리고 그 구동을 기다리는 시간은 억겁의 시간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노트북이 정상 작동되기 시작한다.

껏다가 다시켜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방법인데

오늘은 꺼지지도 않았었는데

꾸욱 오래 누르지를 않았었나보다.

힘이 부족했던지 시간이 모자랐던지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아들 녀석의 건성인 대답이 나를 살렸다.

파일을 성공적으로 업로드하고 나니

갑자기 긴장이 풀어지면서 두통이 몰려온다.

오늘의 최대 복병 처리 완료이다.

남편이 먹겠다고 찜한 닭볶음탕을 빨리 끓여서

내가 먼저 먹는다. 꿀맛이다.

그리고는 더 나빠지지 않게 두통약도 한 알 챙겨먹었다.


그 혼돈의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남편은 산책을 간다며 나간다.

아니 오늘 같이 햇빛이 좋았던 날은

그 햇빛 받으면서 따뜻할 때

운동삼아 산책을 하는게 맞는 거 아니냐?

왜 해가 지려하는데 산책에 나서는 것이냐?

몇번이나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했다만

아랑곳하지 않고 전혀 달라지지않는 남편이다.

먹통이었던 노트북보다도 더 알 수 없는 것이 남편의 뇌구조이다.

남편의 뇌도 재부팅이 된다면 참 좋겠다.

꾸욱 세게 오랫동안 눌러볼까?


(내 노트북이 있는 방 창문을 열고 지는 해를 찍었다. 그런데 이 집은 방충망이 없다. 아니, 여름철에는 어떻게 하지? 나는 모기를 제일 싫어한다. 그리고 방충망 없이 창문을 열어두면 나의 고양이 설이는 어쩌라고. 참 아직도 할 일이 많고도 많다.

이 글을 본 막내동생이 놀래서 전화를 한 김에

창 반대편을 보니 방충망이 거기 있다. 그쪽만 여는걸로다가. 방충망도 복병이 될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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