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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 달력이 주는 미묘함

아직은 기록할 것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교사였을 때는 11월부터 탁상 달력이 여러 개 책상위에 배송되어 왔었다.

물론 미묘한 관계에 놓일 수 있는 교과서 출판사 것들은 배제하고도 말이다.

여러 개는 필요 없으니(딱 한개만 있으면 된다.)

학기말 행사로 주로 내가 운영하던 플리마켓에 내놓기도 했고

졸업생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었다.

그랬던 탁상 달력이 이제 하나도 거저 나에게 전달되는 것이 없다.

물론 지금 강의 나가는 대학에서 내년 학기가 시작되면 하나 줄 것이다만

그것은 그 장소와 공간에서 사용하면 되는 것이고

집에서 내 개인적인 내용까지도 적어둘 탁상 달력 하나가 꼭 필요하다만

그것을 내돈내산하자니 괜히 아까운 생각이 든다.

아들 녀석에게 연말에 내려올 때 회사거 하나 가져다 달라고 부탁은 해두었다만

꼼꼼한 편도 아니고 무심한 편에 더 가까우니 가져다 줄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벽에 붙여두는 긴 달력은 절대 선호하지 않는다.

옛날부터 그 달력이 영

집 공간 디자인의 격을 떨어트린다는 생각을 했었다만

크고 알아보기 쉬운 그 달력의 필요성에는

이제 공감한다.

시력과 기억력 테스트를 겸할 수 있는 도구였던 셈이다.


이렇게 빼곡하게 일정을 적어둔 탁상 달력을 버리는 일은 쉽지않다.

(오늘 대문 사진의 탁상 달력은 2월부터 작성한 것이다. 1월것은 학교에서 쓰던 것에 너덜너덜 기록되어 있다. 엄청 바빴었다. 올해 1월은.)

1년은 보통 가지고 있었다. 담임할때는.

세상이 험난해서 다 지난 일을 가지고 뭐라뭐라

할 경우에 휩쓸릴 때 방어용 자료로 말이다.

그리고 달력을 넘기면서 꽉찬 내용들을 보면

<그래 올해도 잘 살았구나. 열심히 살았구나> 하면서

나를 응원하고 토닥이게도 된다.

12월에 어느 하루쯤은 꼭 달력을 살펴보는 날이 생기더라.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올해 3월 초.

비어있어서 아무것도 적을 것이 없는 탁상 달력을 보고서야

<아. 나 퇴직했구나. 해야할 일이 없구나.>를 절감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지금 마지막장을 보니 3월의 걱정이 조금은 무색하기도 하다.

여전히 바쁘고 열심히는 살았던 한 해였음이 얼마나 다행인가.


막내 동생은 오늘 다양한 검사를 하러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으로 아침 일찍부터 출동한다고 한다.

걱정 때문인지 며칠 동안 잠을 못잤다고도 하고.

아마도 검사 걱정일수도

한 학기를 잘 마무리했고

어려운 보직을 잘 마무리한 긴장감이 풀려서 일수도

미국에서 공부하는 아들이 다니러 와서 기뻐서일수도 있다.

아침 일찍 톡을 보내두었다.

<병원 잘 다녀와. 걱정해서 잠을 못자는 거지. 너무 걱정하지마. 비루한 DNA 로 이만하면 잘 버텨왔잖아. 앞으로도 그럴거야.>


탁상 달력에는 써놓지 못한 일들을 가끔 톡에는 쓴다. 개인적인 내용이다.

탁상 달력은 누군가가 볼지도 모르는 공개물일 수도 있는데(그래서 가급적 공식적인 내용만 기록한다.)

톡은 나와 대화 당사자만 보는 것이라는 차이점 때문이기도 하다만

톡의 내용이 의지와 상관없이 공개되는 경우도 가끔은 있다.

공식적인 일은 휴대폰 일정표에도 적어두기는 한다만

탁상 달력이 주는 미묘한 안도감과 위로감은 휴대폰 일정표를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물론 나는 두가지 모두 사용해서 크로스 체크를 하는 편이지만

그것은 꼼꼼해서가 아니고 나의 기억을 믿지 못해서이다.

이래저래 일정을 기억하는 것이 치매테스트의 기본인 것은 맞다.

아들 녀석이 꼭 탁상 달력을 가져다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직은 그곳에 무언가를 적을만큼의 중요한 일이 많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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