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선물같은 한 학기였다.
실질적인 강의는 어제 마쳤다.
오늘은 15분 정도 마지막 과학 영역에 대한
자신 돌아보기 활동을 하고
어려운 금요일 강의를 빠지지 않고
(누구라도 금요일 오후 강의를 듣고 싶은 사람은 없다. 강의하는 나도 별로이다.
오늘 만난 다른 교수님도 금요일 강의 후 귀가하려면 길이 너무 막힌다고 하셨다.)
그 어려운 완주에 성공한 멋진 학생들에게
과학과 관련된 책을 하나씩 선물하고
(금요일 반 학생들에게만 준다. 그런데 읽을런지는 알 수 없다.)
평가 시험을 보고 마무리하면 된다.
긴장이 저절로 풀어진 뇌 덕분에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집을 나서기도 싫었으나 나의 뇌에게 속삭였다.
스키장을 보러가자고.
학교에서 5분 거리라고.
스키장의 멋진 슬로프를 구경만 하고 오자고.
그곳에서 혹시 맛난 오뎅이나 츄러스가 보이면 못이기는 척 점심으로 먹고 오자고.
사진도 십여장 찍어서 멋지게 SNS에 올리자고 말이다.
아마도 달콤쌉싸름한 유혹이었을 것이다.
운전하는데 힘이 하나도 들지 않았던 것을 보면 말이다.
정말 학교에서 왼쪽으로 핸들을 탁 틀기만 했더니
스키장을 포함한 리조트 정문이 보이고 공룡박물관을 포함한 수목원이 보이는데
와. 금요일 오전인데 스키장 주차장이 이미 만차이다.
내가 스키장에 안가본지 10여년이 되었다고
다른 사람들도 스키를 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만
주차장을 빙빙 돌아도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그냥 눈으로만 눈이 가득한 아찔한 높이의 스키장 슬로프를 눈에만 담고 다시 돌아나왔다.
나와는 이래저래 궁합이 안맞는 곳이다.
춥고 손가락도 다쳤고 무섭고 여하튼 정신이 아득해지는 곳이 바로 스키장이다.
학교 연구실은 교양교육원 교강사가 함께 쓰는 공간인데
금요일에는 거의 사람이 없다.
나 혼자 독채인 셈이다.
공용의 비상 음식들 중에서 남아있는 컵라면 형태의 쌀국수를 하나 먹고(양이 딱 내 스타일이었다.)
메일과 출결 이의신청을 확인하고(아직도 이제야 출결을 확인하는 학생들이 꼭 있다.)
방학 동안에 읽을 책을 챙겨서 차에다 가져다 두고
(방학 중 연구실에 나와서 일을 좀 해볼까 생각했었는데 무리한 계획이었다.)
그 김에 아직 눈이 조금은 남아있는 산과 그 주변을 둘러보고는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저 멋진 나무 벤치에 한번 앉아보지도 못했다.)
이 컴퓨터로는 마지막 브런치 글을 쓴다.
방학중 새 컴퓨터로 바꾸어준다 한다.
이것도 그냥 나쁘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무엇이든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올해 더더욱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정년퇴직의 해이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만.
그래도 어제는 옆 교수님에게 초콜릿을
오늘은 후배 지인에게 무려 샤넬 립밤을 선물받았다.
선물은 다 갚아야하는 법이지만
그래도 받는 순간에는 무지무지 기분 좋아지는 것이 선물의 힘이다.
그 선물의 힘을 누룰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아들 녀석이 얼굴을 보여주는 것인데 알란가 모르겠다.
일단 12월 31일에 내려와서
1월 1일 떡국을 같이 먹고
집안 여러 가지 현안을 처리해주고 간다했으니
그것을 츤데레 아들 녀석이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 생각하련다.
그런데 시간이 왜 이리 천천이 가는 것이냐?
내 강의는 왜 13시 시작이 아니고 14시 시작이란 말이냐? 이제 딱히 할 일도 더 이상 없구만.
2025년 2학기는 나에게는 선물같은 한 학기였음이 틀림없다.
강의를 들은 학생들도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그것은 기적이다. 더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