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 이해하기
대체로 아슴프레한 기억은 나기 마련인데
왜 이 사설 잡지에 글을 쓰게 되었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가 나를 이 잡지에 연결해준 것인지도 1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그 당시 꽤 유명했던 <빨간펜> 이다.
문제를 풀면 가정방문 선생님이 와서 빨간펜으로 채점과 첨삭 지도 등을 해주었던 방문교사 시스템을 운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들 녀석은 <빨간펜>을 했었나 안했었나 그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만
옛날부터도 이 부분에 대한 기억이 없었으니(거참 이상타.)
요즘 새삼 치매 증세라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여하튼 1997년쯤 1년 정도 교원에서 만든 <빨간펜 랜드>라는 잡지 첫 장에 들어가는 짧은 글을 쓰곤 했다.
아마 작은 금액의 수당도 받았을 것이지만
말 그대로 주제도 내용도 내 맘대로 였고
물론 책 발간 시기와 학교 일상에 맞추는 센스쯤은 자동으로 발현되었었다.
그때 나의 글을 읽어준 소수의 독자들은 아마도 <빨간펜>을 썼던 학생들과 학부모님 들이었을 것이다.
요즈음은 이런 잡지들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
카드 뉴스 형태로 SNS에 올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마침 대부분 방학이거나(대학) 방학을 앞두고 있으니 여름방학 특집호에 실린 글을 골라보았다.
1997년이니 교사 생활 12년차에
아들 녀석 초등 저학년이었을 때 였겠다.
아마도 아들 녀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신 글로써 전달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그 글을 쓸 당시의 내 마음이 말이다.
아마 강제로 아들 녀석에게 보여주기는 했던것도 같다.
[가장 큰 준비물]
방학이 없는 학창 시절을 생각해본 본 적이 있나요?
매일매일 부대끼며 수업과 숙제와 시험에 시달리면서도
우리가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오로지 신나는 여름방학이 기다리고 있다는
그 가슴 설렘뿐.
비록 시작하는 날부터 어긋나기 시작하는
야무진 방학 생활 계획표를 세우고 또 세워보고
놀러 갈 일만 손꼽아보고 또 기다려 보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뿐.
며칠은 잠으로 허송세월을 하고
며칠은 생각 없이 지나가고
며칠은 휴가 준비로 들뜨고
그리고 다녀온 뒤 며칠은 지쳐서 지나가고
어느 새 남은 방학은 눈꼽만큼이고
남겨진 숙제를 보니 한숨만 나오고
이것이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의 방학 일기가 아닐런지요.
요번 방학은 너무 욕심내지 않기로 해요.
그저 한 가지 목표만 세우고
그것만이라도 실천해보기로 말입니다.
추리소설 10권 독파하기
요리 다섯 가지 익히기
미술 전시회 다섯 번 관람하기
그리고 친구들에게 편지 열통 보내기 등
작지만 소중한 나만의 추억을 만드는 방학.
2학기를 준비하는 가장 큰 준비물입니다.
대체적인 맥락은 지금도 비슷하나
요새는 방학 숙제란 거의 없다.(학교마다 다르다만.)
과제를 낸다고 해오는 학생들도 거의 없다.
빡빡하게 검사도 하지 않고 순전히 학생 선택이다.
나는 마지막해 몇 년동안 과학책 읽기를 과제로 부여하고
읽고서 독서 감상문을 내면 생기부 과세특의 독서란에 기록해주는 것으로 대신했었다.
멋진 몇 명은 과제를 제출한다.
방학 계획도 너무 창대했다.
추리소설 10권도 요리 다섯가지도 미술 전시회 다섯 번 편지 열통은 너무 많다.
딱 한권이나 하나씩만 해도 충분하다.
그 시절의 나는 젊어서인지 욕심이 과했구나.
삶에 있어서 지금은 많이 미니멀해진 것은 맞는 듯 하다.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학교 관계자들에게 방학이란
숨구멍이고 재정비 기간이고
충전과 휴식의 매커니즘의 완결판임에는 틀림없다.
나의 진정한 방학은 오늘부터이다.
토, 일요일은 방학이라기보다 주말이었던 거다.
주말 휴일과 방학 휴일은 엄연히 커다란 차이가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론 그렇게 다가올 것이다.
옛날 내 글 읽어보기.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돌이켜 볼 수는 있다.
과거의 나를 이해하려는 방법이다.
이해해도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과거의 나에게 조금은 너그러워지는 일도 필요하다.
나는 나에게 조금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