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하지만 그게 그 때의 나이다.
만약에 지금 서울이었다면
나는 지하철을 타고 룰루랄라 고터역에 갔을 것이다.
고터역 옆에 있는 옷가게들을 순방하면서
내 스타일의 옷을 찾아 패션 피플을 자처하고 눈을 반짝이고 있었을 것이다.
날이 날인지라 아마도 못이기는 척 조끼를 하나쯤 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는 적당히 배가 고파지면 바로 옆 백화점
지하 푸드코트에 들어가서
좌우로 앞뒤로 두어번씩 돌고 나서는
양도 적당하고 가격도 적당한 도시락 종류를 포장해서
집에 돌아와 남편과 나누어먹는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한끼 때우기 딱 좋은 먹거리가 지천이다.
그런데 이곳은 서울이 아니다.
남편은 하필 오늘 저녁 6시 CT 검사가 예정되어 있어서
저녁 늦게나 집에 돌아오게 될 것이다.
저녁을 먹고 올지 안먹고 올지도 모르겠다.
질퍽한 비나 눈이 내리지 않고
기차가 파업을 하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날이다.
종강을 하니 하루가 길고도 길다.
오전에도 갑작스럽게 생긴 포럼에서의 발표 자료를 하나 만들고
(아마도 발표 신청자가 없었나보다. 잘 아는 선배님의 부탁이니 거절하기가 어렵다.)
탄소중립연구 마무리 작업을 하다가
이것저것 하나도 영양가는 없는 일들을 처리하고는(될지 안될지 모르는 알바일이다.)
내 방 책상에서 너무나 가까운 하늘한번 올려다보다가는
내 옆에서 인형처럼 앉아있는 고양이 설이와
눈 맞춤하는
평온하기 그지없는 날을 보내고 있다.
전화 통화 한 통이 유일하게 오늘 내가 입을 벌린 일이다. 밥 먹을 때 빼고.
설이도 약간 지루한 눈치이다.
오빠가 와서 다이내믹하게 놀아주어야는데
나는 그것은 영 젬병이다.
이런 마음에 오래전 쓴 글을 읽어본다.
1986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니며
초보 교사티를 팍팍 내고 있던 시절에
자비출판한 책의 서두와 마무리에 쓴 글이다.
책 표지는 초등 동창 친구 영어샘이 그려준 것이었다. 지금 막 그 친구가 생각났다.
[글을 쓰는 사람은 좀 색달라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또 그래야만 글이 써진다는 사람들에게
시 한줄을 위해 새벽잠을 잊는 사람들에게
글을 위해 아무것도 한일없는 평범한 한 사람의 습작집을 드립니다.
돌이켜보면 스물 다섯해.
이제는 인생의 한 획을 그어도 좋을 시기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말과 글에 책임을 다해햐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의 삶이 나를 키워놓았듯이
앞으로는 내가 나의 삶을 가꾸어나가야 할 때입니다.
詩集보다는 시집가는 것이 더 기쁘겠다는
엄마, 아빠. 감사합니다.]
[난 분명 과거형이다.
컴퓨터가 모든 걸 지배하는 시대에
그것도 과학선생이라면서
전화보담 편지지가, 말보다는 글이 힘세다는 믿음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으니.
그러나 돌고 도는 세상이니-옷도 복고풍이 유행이고 입학시험도 되살아나는걸 보면-
아마 내 맹꽁이 같은 믿음과 일편단심도 빛볼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고보면 난 미래형이련가?
이제 얼마간 침묵하는 연습이나 하련다.
자기 일처럼 도와주신 몇분들께 - 이름을 밝히면 감사함이 절반으로 줄것 같다.-
부끄러움으로 빨개진 고개를 숙인다.]
이 책을 만들어서
나의 첫 제자들에게 선물로 주었던 것 같다.
아직 가지고 있는 녀석이 있으려나.
제발 버려주었음 한다. 창피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그 시절 나의 시집가는 것을 그리 희망하셨던 어머니와 똑같은 마음으로
나는 아들의 결혼을 간절하게 희망하고 있다.
아니다.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며느리나 손주 생각이 간절하다. 순전히 내 욕심이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