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시간과 사투리
정년퇴직 후 불면을 호소했었다.
불면 치료차원으로 청소도 하고 소독 알바도 하고 산책도 하고 몸을 마구 굴려댔었다.
원래 초저녁잠이 많고 일찍 잠에 드는 스타일이라
아침에는 너무 일찍 눈이 떠지고
(평균 수면 시간은 일정한 법이다.)
너무 일찍 일어나기 그래서 꼼지락거려댔던 그런 날들이었다.
그래서 무섭기도 했다.
긴긴 새벽을 맞이하는 것이 말이다.
새벽은 밝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시간이라는 것을 분명 알지만
그래도 어두움 그 자체는 나에게는 아직도 두려움
그 자체였다.
어두울때 무엇을 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데 참으로 요상타.
종강을 하고 난 지난주 토요일부터 아침 기상 시간이 주금씩 느려지더니
어제와 오늘은 무려 6시반이 지나는 신기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딱히 어디가 아프다거나 컨디션이 나쁘다거나
딱히 일이 있어 늦게 자거나 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물론 아슬아슬하기는 하다.
로봇청소기가 자꾸 남편 침대 밑으로 들어가서 꼴아박아있어서 구출하느라 힘을 썼더니
허리가 무겁고
(아들 녀석이 오면 특단의 조처를 해야 되겠다. 다시 복대를 하고 있다.)
머플러를 늘상 감고 있는 목은 날이 덜 추워서 그나마 버티고 있다만
오늘은 강추위라 하니 절대 집콕할 예정이다.
그래도 컨디션 난조가 아닌데 이렇게 늦게 일어나다니
내 신체에 일어난 내가 모르는 무슨 변화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정해진 시간에 집을 나서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아직도 알 수 없는 내 신체의 작동이다.
참으로 요상타.
어제 우연히 돌려본 유튜브 중에
부산 연고 야구단에서 올린 영상에서 부산 사투리 따라하기가 있었다.
부산 출신인 두 선수와 부산 출신이 아닌 한 선수가
영화 등에서 나와서 이미 유명해진 대사를 따라해보는 것이었는데
왜 나는 부산 사투리의 그 억양이 자동 음성 재생 되는 것이냐?
우리 집에 부산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아버지뿐이셨고
(물론 가끔 만나던 고모와 고종사촌들의 찐 부산 사투리 억양이 있다만)
아버지는 그리 센 억양의 부산 사투리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나보다.
주어지는 멘트마다 아버지 목소리로 자동 재생이 될 뿐 아니라 나도 곧잘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은거다.
엄마는 대전 사람인데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한다는 느낌이 거의 없었다만
(이모랑 삼촌들은 조금 사용하는 것 같았다만)
내 기억이 부모님 두분에게 관대하게 작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두 분의 목소리를 들은지 오래되어 왜곡된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참으로 요상타.
특별한 날이면 부모님 생각이 어떤 연고로든지 스물스물 나게 되는 것이 말이다.
막내 동생은 어제 꿈에서 아버지에게 엄청 혼났다고 하는데 그것마저 부러웠다.
내 꿈에도 나타나 주셔서 마구마구 센 억양의
부산 사투리로 혼내주시기를 바랬는데 말이다.
아버지에게 칭찬 받는 일은 극히 드문일이니까.
이쁜 우리 엄마도 함께 나타나주시면 성탄 선물로
더 이상의 것이 없을 듯 한데 말이다.
이 나이에도 부모님이 보고 싶을 줄이야.
참으로 요상타.
요상타는 요상하다의 사투리 버전이다.
우리 아버지가 맘에 안들때 주로 하시던
돌려까기 단어이다.
(오늘 대문 사진은 매번 비행기 기장인 남편을 픽업하러 인천공항을 다니는 후배가 찍어 보내준
공항 근처 새벽 사진이다. 대단하다. 매번 공항까지 모셔다주고 모시러 간다니. 현모양처가 거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