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고기 혼밥이다.
근 한달여만에 이곳에 음식 이야기를 쓴다.
그만큼 바쁘고 여유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대충 먹고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제 재보니 살은 안빠진 것 같으니 되었다만.
요새 계속 물말은 밥이나 국말은 밥의 형태만 선호한다.
시간이 없어서 밥을 빨리 먹으려니 그렇기도 하고
그냥 맨밥을 먹으면 이상하게 목이 메이고 뻑뻑하다.
소화 능력 부족이 점점 심해지는게 느껴진다.
남편은 조금씩 밥 먹는 양이 늘어나는 듯 한데
나는 조금씩 줄어드는게 분명하다.
나홀로 크리스마스 이브인 오늘 점심. 고기가 땡겼다.
사실은 어제 저녁부터 먹고 싶었는데
혼밥인데 고기를 구워먹는 것까지는 차마 시도해보지 못했던 것이라
주춤주춤 망설였었다만
뭐 어떠냐 고기집에 혼자 들어가서 먹는 것도 아닌데 싶어서
얇게 썰은 갈빗살을 꺼내서
고기 굽고 상추 씻고 보리된장 꺼내고 마늘 얹어서 다섯점 먹었더니 배가 너무 부르다.
내가 혼자 고기얹고 상추쌈을 만들어 입에 넣는 동안 고양이 설이는 내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입을 너무 크게 벌려서일까?
설마 고기가 먹고 싶은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그리고는 내가 다 먹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기 캣타워로 돌아가버렸다.
디저트로는 귤 하나를 까먹었고
아참 아침에 먹으려고 믹서기에 넣어두었던 바나나와 딸기가 있는데
믹서기가 고장인지 돌아가지 않아서(아들 녀석이 오면 봐달래야 겠다.)
내가 한땀한땀 수저로 스무디를 만들어 놓은 것도 있는데 잊어버렸다.
저녁에 먹어야겠다.
그런데 이렇게 배부르게 먹고 났는데
맛난 빵을 먹고 싶은데 어째야할까 모르겠다.
내 고질병인 밥먹고 빵먹기가 발동중이다.
밥을 왕창 먹고 나면 달달한 빵 한 입이 그렇게 먹고 싶어지는 것이 증세이다.
이곳은 조치원 K대와 H대 사이인데 스타벅스도 안보인다.
명색이 대학가인데 말이다.
조치원역에서도 못본 듯 하다.
지난번 살았던 서울 K대와 S대 사이에는 스타벅스가 한집 건너 한집 수준이었다.(조금 과장해서)
커피맛은 잘 모르지만 그곳의 폭신폭신하고 달달한
그 케잌의 맛은 잘 알고 있다.
달달하고 부드럽고 맛난 빵 한 입이 이렇게 그립게 될 줄이야.
한 조각도 필요 없다. 너무 많고 너무 달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딱 한 입이다.
하루 종일 유튜브에서 크리스마스 노래를 틀어놓고 있다.
1년 중 딱 2일만 듣게 되지만 안 듣고 지나가기는 그런 것처럼
크리스마스 케잌 한 입이 기다려지기는 한다.
이런 날 맛난 케잌 한 조각을 들고 오는 멋진 남편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하다.
그럴리가 없다.
(이번 대문사진은 화학 버전의 크리스마스 트리이다.
아직 생명과학과 지구과학 버전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못찾았다. 어딘가에 누군가는 만들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