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글 돌아보기 여덟 번째

상자 텃밭을 만들어볼까나.

by 태생적 오지라퍼

중문을 설치하느라 고양이 설이와

내 방으로 피신을 와 있다.

원래 설이는 누가 집에 오면 신기해라하면서

그 주위를 마구 돌고 일하는 것을 참견하고

세밀하게 관찰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이곳으로 이사오고서는 아직 낯설은 환경 때문인지

주로 내방 자신의 비밀 장소인 옷장 아래 그 공간에 숨어버린다.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덕분에 나는 이곳에서 책을 읽는다.

성적 이의 신청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비상대기 중 귀를 쫑긋하고 있는

설이도 안심시켜야하고

이 와중에 혈압약 타는 병원과의 날자 조율(너무 일찍 가면 중복이라고 약처방전을 주지 않는다),

5일 친정아버지 기일맞이 호국원 방문(눈길이 아니길 바란다.)

6일 연구발표 행사 후 저녁 먹을 식당 예약 등

잡다하고 소소한 일들을 처리하면서 책을 읽는다.

오늘은 내 교직 생활 중 최고의 꽃이었던 기간인

<미래학교> 근무 당시 함께 으쌰으쌰 했던

선생님들의 경험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 중 내가 쓴 파트는 <생태전환교육> 부분이다.

그때도 생태와 관련된 내용들은 내 차지였다.

왜냐고? 가장 나이가 많았으니 그러하다.

나이가 들어야만 그제서야 보이고 생각나는 것이 자연이라는 사실은 조금 가슴 아프기도 하다.


[ 미래 농업과의 연결점, 생태 텃밭 가꾸기


과학교과에 <광합성> 단원이 있다.

이전에는 광합성이 일어나는 과학적인 과정과 광합성량에 영향을 주는 변인들, 관련 그래프 해석 등 여러 가지 개념을 이해시키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학생들의 이해도와 관심도가 제자리인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점심을 먹고 한바퀴 돌아보는 학교 정원을 보고서

광합성이라는 과학 개념에 대한 이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광합성의 중요성을 알고

광합성에 영향을 주는 변인들을 알게 하려면

식물을 직접 재배해보는 것이 살아있는 공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식물에게도 생명 유지에 대한 강한 힘이 있음을 느껴보는 것,

식물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일인지를 체험하는 것이

실생활을 기반으로 한 진정한 의미의

광합성 수업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은 곧 실천으로 이어졌다.]


학급별로 작은 규모의 텃밭을 만들었고

무엇을 어떻게 심을지는 학생들 스스로가 결정했으며

물론 돌보기와 좌절과 기쁨도 학생들과 함께였다.

가끔 긴 휴일에는 걱정스러워서 내가 나가서 물을 주기도 했고(그러다가 발목을 삐끗하기도 했었다.)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고

다른 선생님들과의 협업이나 의견 개진의 시간을 갖기도 했지만

바쁜 미래학교 생활에서 텃밭 작물들이 주는 행복감은 엄청났다.

초록초록 색도 그렇고

살며시 달리는 열매들도 그렇고

그 여리여리한 채소들의 건강하고 싱싱한 맛을 한번 보면

다음해에도 텃밭을 안하고는 못배기게 된다.

중독성이 강하다.

이제 텃밭을 안한지 1년이 되어간다.

학교 퇴직 후 텃밭할 땅이 없었으니 그러했고

고양이 설이 때문에 상자텃밭을 집에 들여다 놓지도 못했으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 이사온 집에는 볕이 잘드는

앞 베란다가 있다.

물론 지금은 빨래 건조대가 놓여있기는 하다만

조금씩 위치를 이동하면 로메인 상추 정도는 충분히 재배 가능할 듯도 하다.

사이즈가 더 큰 뒷베란다도 있는데

그곳에는 햇빛이 충분하지 않을 듯 하다.

이참에 다시 도시농부의 명맥을 이어가 볼까나 고민해봐야겠다.

책을 읽으니 새로운 생각도 열린다.

그나저나 중문은 언제 설치가 끝나는 것이냐.

책을 읽으니 졸음이 몰려오기도 하는데.

작가의 이전글영하 10도라는 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