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조금은 창대한 계획

지나고 보면 소소한 것일게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오랜만에 바쁜 하루를 보냈더니 잠을 푹 잤고

(중간에 깨서 화장실 다녀오거나 핸드폰 보는 일이 없으면 푹 잔 것이다.)

자잘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아침이다.

분명히 해뜨는 시간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빨라지고 있을 것이다.

화장실 가는 동안 느낀 거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이 아주 세밀하게 차이가 나는 듯도 하다.

맞은편 아파트 집에 불이 들어와서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다.

이곳은 아침 일찍 창에 불 들어온 집이 별로 없더라.

방금 한 집 창문에 불이 들어왔다가는 다시 나갔다. 화장실인가?


조금 더 자도 되는데 이미 뇌가 깨어났으니

오늘의 계획이나 정비해본다.

이렇게 글로 쓰고 나면 일의 선후나 중요도나

챙겨야 할 것들이 선명해지는 장점이 있다.

일단 오늘은 막내 동생의 생일이다.

어제 조마조마하던 유방암 정기검진 결과가 깨끗하다고 나와서 기분 최고이고

잘 안가던 부산여행을 간다니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기도하는 의미로

남편과 둘이 맛난 거 사먹을 정도의 송금을 완료했다.

이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다.


어제 연구 발표회 후속 작업을 진행해야한다.

연구팀 각자마다 임무를 부여하기는 했지만

그 중 2명이 내일쯤 해외여행을 가는 관계로

그 자리메꿈은 내가 해야한다.

연구 대표이고 할 일이 제일 없는 내가 하는게 맞다.

다른 사람들은 고3 엄마이기도 하고

겨울방학 맞이 자녀 양육도 해야하고

학교를 옮기느라 또는 그만두느라 짐정리도 해야하고

기타 할 일들이 나보다 두배는 더 많다.

제일 큰 변동은 학교 선생님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 단계별 스텝을 구체적으로 넣어달라는 의견이다.

최대한 교육청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보겠다.

원래 연구라는게 주문한 사람의 입장을 반영하게 되기 마련이다.

중립적인 연구란 사실상 쉽지 않다.

그것이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위탁연구의 경우에는 말이다.


다음으로는 국세청 사이트에 가서

부가가치세 신고와

연구원들에게 준 기타소득세 신고 절차를 확인하고

수행하는 일이 있다.

아들 녀석이 같이 있다면 부가가치세 신고는 금방 알려줄 것 같은데(자기가 해봤으니까 말이다.)

이것저것 찾아보고 진행해보고 안되면 또 상담 센터에 문의하고 그래도 안되면

화, 목에만 운영되는 출장세무서에 가면 될 것이라 편하게 마음먹는다만 마음 한 구석이 무겁기만 하다.

원래 세무서, 경찰서, 이런 공공기관을 무서워한다.

어디서부터 기인한 트라우마인지는 모르겠다.

아니다. 알겠다.

남편이 집을 날려먹은 그 시점부터이다.

세무서에서 날라오는 우편물이 공포로 다가온

바로 그 시점이다.


남편이 항암주사를 맞고 집을 비운 이틀 동안

남편과 함께 있으면 절대 먹지 못하는

소위 몸에 좋지 않다는 것들을 먹는 일탈을 느꼈었다.

소시지구이, 삼겹살과 김치 볶음, 오랜만에 코카콜라, 크림 잔뜩 케잌 이딴 것들이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다시 조신한 건강식을 준비해야 한다.

알배기 배추랑 고구마, 계란, 당근 삶고 슴슴한 것들로 식단을 구성한다만

하나쯤의 치트키는 필요하다. 닭볶음탕이다.

오늘 저녁 당첨이다.

어제 해장국도 먹고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도 먹었으니

다음 주 목요일 서울 나들이때까지

내가 하지 않는 먹거리에 대한 욕구쯤은 참을 수 있다.


그나저나 토요일 결혼식을 갈까 말까 결정해야는데

지금 현재로는 간다 : 안간다 = 80 : 20 수준이다.

오래된 대학 동창에 근무학교도 같았고 더군다나

작년 퇴직 후 힘들었던 암흑의 시기에 나에게 맛난 밥을 사준 세상에서 가장 선한 친구이다.

나의 현 상황을 가감없이 들어줄 수 있는 친구이다.

나쁜말이거나 남을 흉보는 말을 하는 것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친구이다.

이 글을 쓰고 나니 마음의 결정이 된다.

가야겠다. 힘들어도 가야겠다.

글이 주는 선명함이 바로 이런 것이다.

머릿속에서만 있을때랑 글로 시각화되었을 때 비로서 느낄 수 있는 명확함이 있다.

이제 성적평가표 제출 버튼을 누르러 가보자.

다행히 성적 이의신청은 딱 1명이었다.


(어제 학교에서 오랫만에 꽃 바구니를 보았다.

작년 이맘때쯤 생애 가장 많은 꽃 선물을 받았더랬다.

꽃은 다 이쁘다. 사람도 다 이쁘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이 다소 심심해질지는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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