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팬클럽이나 팬덤에 대한 다소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던 사람이다.
누구를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관심이 생기는 과정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어떻게 저렇게까지 좋아라할 수 있을까 싶었던 사람이다.
추우나 더우나 새벽이나 밤이나 기다리고 줄을 서고 응원을 하러 지방 곳곳을 찾아다니는 그런 일은
내 생전에는 없을 일이라고 단언했었다.
그랬던 내가 (물론 추우나 더우나 새벽이나 밤이나 기다리는 일은 못한다. 줄도 못 선다만.)
응원을 하러 지방을 가는 것까지는 해봤다.
대전과 인천이다. 부산까지는 차마 못갔었다.
당일치기가 불가능한 지역까지는 아직 팬심이 부족하다.
<불꽃야구> 이야기이다.
3년 전부터 나에게 월요일 저녁에는 꼭 해야할 일이 있던 시간이었다.
물론 엄청 힘든 하루를 보낸 날은 졸다 깨다하다가
다음 날 돌려보기도 했다.
초저녁잠이 많은 나에게 월요일 10시는 결코 쉽지않은 시간이었다.
부득이하게 유튜브 송출로 간 작년부터는
월요일 8시가 되었고(나에게는 다행이다만)
집에서 혹은 일정이 있으면 웬만해서는 끼지 않는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으로라도 본방사수를 했다.
그만큼 재미있기도 했다만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마음이 쓰리고 아플게 뻔한데도
제작에 애쓰고 있는 사람들을 지치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이미 오랜기간 조금씩 스며들어 그들의 팬덤이 되었다는 증거이다.
<불꽃야구>가 나를 지치지 않게 해준만큼
나도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고 싶었던거다.
왜 나의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 팬질이 <불꽃야구> 였는지는 한마디로 정리하기 힘들다.
내게 익숙했던 야구와 그 시대의 선수들 이야기이기 때문일수도 있고(익숙한 것이 좋을 나이이다.)
선수로서의 전성기 나이는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그들의 야구 감각과
열심히 하는 열정때문이었을수도 있고
(내 현실에 빗대어서 말이다.)
친정아버지를 연상시키는 노감독님 때문일수도 있고
(한때는 무섭다고 정평이 나있던 그 분도 나이가 들어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애잔하기만 했다.)
야구를 정말 좋아하고 하고싶고 열심히 하지만
높은 프로의 벽을 넘기 쉽지 않은 영건들의 이야기가
내 아들이나 제자들 모습과 닮아서이기도 했다.
여하튼 나는 그렇게 <불꽃야구>에 스며들었고
이제는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그의 팬덤이라는 것을 밝히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SNS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고
직관 경기에 구경가서 맘졸이며 응원을 하고
팝업스토어에서 키링 몇개를 사고
선수들이 나오는 영상을 웃으며 봐주는 정도이다만
내가 이정도로 그 시간을 기다리는 일은 <무한도전> 이후로 처음이다.
<무한도전>은 주말 저녁 편한 마음으로 아들과 함께 보는 그 시간과 느낌이 좋았던 것이지
가끔은 억지로 짜내는 듯한 웃음의 소재에는
다소 불만이 있기도 했었다.
그래도 그때 김태호 PD의 작품 구성 능력은 대단했다고 인정한다.
한때 <신서유기> 라는 프로그램도 틀어놓고
아무 생각없이 웃기에는 딱 좋았었고
나영석 PD의 능력도 신선하고 출중했으나
요즈음은 본인이 주인공인양 프로그램 등장시간이 너무 많아져서 주객전도의 느낌도 있다.
그리고 요즈음 빠져있는 <불꽃야구>의 장시원 PD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가 이전에 만들었다는 도시어부, 강철부대, 최강럭비
이런 프로그램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라
한번도 본 적이 없다만(아무리 팬덤이래도 그것까지는 안본다. 럭비는 몇번 보았다.)
그가 야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프로그램의 성패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야구를 걱정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프로그램에 그대로 묻어난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김태호, 나영석 PD 에 버금가는 예능 PD 반열에 그를 올려두었다.
어제 오랜만에 월요일 8시가 나에게 다시 기대되는 시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들을 보면서 감동했다.
<불꽃야구> 팬덤들이 이 어려운 시기를 함께 보내고자하는 마음들이 잘 묻어나고 있었다.
특히 내 나이 즈음의 무료하고 지치고 또는 아픈 일상에 유일한 낙이 되어준다는 서툰 고백들이
전국 각지에서 아니 세계 각지에서의
실시간 댓글로 드러나는데
이것을 보면 장시원 PD는 좋기도 하고
마음이 몹시 무겁기도 할 것 같다.
팬덤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나는 그 과정과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팬덤이 만들어지는데는 다 서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그게 팬덤을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내 월요일 저녁 8시가 기쁨으로 남아있기를, 기다리는 시간으로 남아있기를 하는 바람뿐이다.
(오늘 아침에 보니 어제 유튜브 올린 영상의 조회수가
훌쩍 50만을 넘었더라. 8시간만에.
이러기는 정말 쉽지 않은거다. 힘내라. 장시원PD.
우리가 당신이 만든 작품의 팬덤이듯이
당신들은 우리 응원단들의 팬클럽임을 잘 알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팬인 관계.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