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은 항상 나에게 기인한다.
막내 동생과 나는 비슷하기도 엄청 다르기도 하다만
특정 방송 콘텐츠에 대한 호불호는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었다.(나만 그랬었나?)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게 되었고
동생은 아직도 드라마에는 인생이 녹아들어가 있다면서 열심히 보고 있다 한다.
티비 없이는 못산다면서 말이다.
도대체 나는 왜, 언제부터 드라마를 멀리하게 되었을까?
한때는 드라마 작가를 꿈꾸며 학원에 등록도 했었고
(한번 가보고 도저히 아니다 싶어서 그만 두었다만.
그때는 아들 녀석이 어렸을때이다.
무시무시한 양의 과제를 감당할 능력도 시간도 안되었었다.)
그 시대치고는 독한 팩트와 대사가 난무하던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를 열심히 봤던 기억은 분명한데
언제부터인가 드라마를 기다려서 본 기억이 사라졌다.
제일 큰 이유는 아마 나의 몰려오는 초저녁 잠이었지 싶다.
12부작 이런 드라마가 하는 시간은 대부분 9시 뉴스가 끝나고 난 시간이고
내가 아직 깨어있는 8시대에는 막장 드라마 스타일만 방영되곤 했으니 말이다.
무엇을 생각하던 상상 그 이상인 막장 드라마 보는 것을
혐오하는 스타일이다.
10시쯤 시작하는 드라마를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기다려서 보기에는
내 일상은 너무 일찍 시작했고
매일 매일 최대의 속도로 달렸으므로
희대의 명작쯤 아니고서는 본방사수가 쉽지 않은
그런 일상 시스템이었다.
방학때는 가끔 봤다.
스토브리그, 천원짜리 변호사, 검은 태양 등
남궁민 배우 작품을 봤었고
(다소 과장인듯한 또는 현실인듯한 연기에 끌렸었다. 한때.)
드라마보다는 편하게 웃는 예능 보는 것을 좋아라하는 형태가 굳건하게 자리잡게 되었었다.
아마도 신경쓰고 봐야하는 심오하고 후벼파는 드라마 시청이 버거웠을 수 있겠다.
내 현실도 깜깜한데 드라마까지 더한 그 상황을 마주하기 불편해서였을 것이다.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내 현실과 마주하기 싫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아마도.
따라서 최근 유행이었다는 대기업에 서울에 자가가 있다는 김부장 이야기도 보지 않았다.
보지 않았다는 것이 맞다.
요즈음은 본방 시간을 놓치더라도 다시 찾아볼 수 있는 기회는 많고 많으니 말이다.
서울에 자가가 있는 사람이 마냥 부러워서였을지도 모른다.
서울이 아니라는 점만 빼놓고 생각한다면
아직 내가 못 찾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맛난 베이커리가 주변에 없다는 것과
새로운 구경거리가 걸어서 갈만한 주변에 없다는 것을 빼놓고는 조치원 생활은 나쁘지 않다.
특히 일출과 일몰 멋진 장면이 눈에 들어오고
해와 달도 훨씬 더 뚜렷하게 볼 수 있고
친절한 사람들이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이곳에서 무언가를 물어봤을 때 이상한 눈빛과
하대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아직은 없다.
(서울에서는 종종 받은 눈빛이다.)
적어도 드라마에서의 비춰지는 소도시 삶보다는 나쁘지 않다.
이제 드라마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 빠질 나이쯤은 아니다.
그런데 가끔은 드라마에 몰입할 수 없는 내 감정의 메마름이 가슴 아프기도 하다.
그래도 야구 예능이지만 진짜 야구를 하는 <불꽃야구>에는 십분 몰입하고 있으니
(아니 그 이상이다.)
그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내 뇌구조이지만 내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는 법이다.
이렇게 견고해진 드라마에 대한 내 감정을
한방에 되돌릴 그런 드라마가 나올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드라마를 조금은 기대한다.
(어제 오랫만에 꽃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이에 잊어버린것인지 영 마음에 안든다.
꽃이 안이쁘게 나왔다.
사진에 물론 다 담을수는 없겠다만.
두 달여만에 꽃사진 찍기 노하우를 잊어버린듯 하다.
꽃이 안이쁠리는 없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