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새해는 언제부터일까?

아직 두 번의 기회가 더 남아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신정에는 학교에 나갔었으니(작년까지는)

1월 1일은 그냥 하루 쉬는 공휴일이었고

학기말이라 항상 무지무지 바빴었으므로

새해가 시작된다 그런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었다.

옛날 고리고리짝에는 다같이 방송대상도 보고 가요대제전도 보면서 해가 바뀌는 것을 느끼곤 했었다만 그렇게 되지 않은지도 오래되었다.

그러다가 어영부영 며칠이 지나가고 나면

<그래 새해는 구정부터가 맞지> 라고 위안을 하면서

미룰 수 있는 일들을 미루어보고 힘들게 맞이한 방학을 자고 먹고 자고 먹고 하면서 보냈었다.

그러다가 막상 구정이 되면

장보느라 음식하느라 시댁다녀오느라 파김치가 되어서

새로운 것을 구상하거나 도모할 정신도 기운도 없었더랬고

구정때 쯤이면 새학기 대비 교직원 회의부터 시작해서

3월 맞이에 들어가느라 마음과 몸이 다시 바빠지는 날들이었다.

그렇게 40년을 보냈으니 지금의 내 몸도 아마

그 익숙한 스케쥴대로 따라가고 있는 중일게다.

비슷한 컨디션이다.

몸에도 관성과 습성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새로운 마음을 먹은 것도

특별한 계획을 세운 것도 없는 채로

2026년 1월의 3주가 훌쩍 지나갔다.

마치 아무것에도 쓴 기억이 없는데

통장에 월급이 다 빠져나간 그 느낌과 똑같다.

아무 생각없이 소독 알바를 뛰어다니던 그 시절이 좋았다는 생각도 불쑥 든다만

소독 알바에다가 카드 수량 체크 알바 두 탕을 뛰던 친구가 허리가 아파서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제 우리나이에는 그럴 수 있다 생각이 들고(소독약도 꽤 무겁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일이라는 그 말의 뜻이 조금은 이해도 간다만

나는 일도 좋아라하고 그 중에서 여러 명이 어울려서 하는 일을 더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국립 세종 수목원을 다녀왔지만

오늘의 대화는 수목원 위치를 물어보기 위해서 매점에 들렸을 때 뿐이었고

(주차장을 공원과 공유하는 것을 몰라서 너무 멀리 주차를 했었다.)

남편과 고양이 설이와의 일방적인 대화밖에 없는 날들인데

(아들에게는 톡으로만 어제 일을 물어보았다.)

이러다가는 라이브 방송이나 줌회의라도

열어야 할 판이다.

너무 너무 심심하고 대화가 고파서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전화를 하는 것은 민폐가 될까봐 피하고 있다.

동생이나 아들 녀석 빼고.


톡이나 브런치는 글이고 내가 진정 필요한 것은 말(TalK)이다.

어쩌면 그 말과 함께 오가는 수긍의 눈빛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이들어서는 가까운 곳에 지인이 사는 것이 최고라는 그 말이 맞을거다.

소소하지만 새해 계획을 같이 세우고 무언가를 같이 도모해볼 친구가 근처에 있다는 것이 행복임을

예전에는 몰랐었다.

이 나이에도 몰랐던 것이 왜 그리도 많은가? 죽을때까지 배워야한다는 말도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겠다.

지금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대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도 아직 내 새해의

두 번째 시작점인 구정도 멀었고

세 번째 시작점인 3월 2일 개학도 멀었으니

조금은 루즈한 날들을 보내도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국립세종수목원 온실 입구에 있는 소원나무에 커다랗게 내 소원을 적어 걸어두었다. 너무 정확하고도 간절한 소원이다. 저거 하나면 올해 계획과 소망에 다른 것은 없어도 된다. 그런데 내가 도와줄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마냥 소원빌기나 할 수 밖에. 보름달에게도 빌고 소원나무에게도 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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