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냐 유지냐.
어제 저녁부터 휴대폰은 시스템 업데이트를 하겠냐고 물어보기 시작했었다.
카톡 업데이트의 후폭풍이 있기 이전부터도
컴퓨터나 휴대폰 업데이트 메시지에
그냥 오케이를 하기 이전에 잠시의 주춤거림이 생기곤 했었다.
그래서 어제 저녁에는 안했다가 오늘 아침 방금 전 오케이를 누르고 잠시의 정적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잠시간의 시간이 평온스럽지는 않고 늘상 조금의 걱정스러움이 함께 하는 것은
아마도 학교에서의 정보부장 업무 경험에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전공이 과학이다보니 학교에서의 업무 중 가장 많이 했던 것은 과학부 일이었을 거다.
정확한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만.
다양한 업무를 한 스타일이다. 성향상.
물론 학급 담임은 기본이고 말이다.
한때 정책적으로 과학교육에 방점이 찍히면서
과학 실험을 도와주는 실무사님도 생기고
과학교과 수업 시수도 많아지고
과학부라는 교과이면서 고유 업무를 갖는 부서가 만들어졌었더랬다.
체육부와 함께 교과 특성을 갖는 부서로는 두 교과가 있었다.
물론 학교별로 인문사회교육부나 자연과학교육부로 통칭하는 부서를 만들기도 했었다만.
부서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그 몫의 업무가 주어진다는 것이고
해당 부서가 처리해야할 공문이 마구 내려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학교사로서 업무를 과학과 관련된 것만 할 수 있다는 것은 편리함에 있어서는 장점이지만
학교 전체를 볼 수 없다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요즈음은 학교에서 과학부가 거의 없어지는 추세이다.
대체해야할 일들이 점점 늘어났는데 그것이 바로 디지털기기를 총괄하는 정보 업무였고
이제는 AI나 환경이나 생태전환, 탄소중립까지 다루어야하는
과학정보부 혹은 자연과학부가 존재하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업무를 함께 할 실무사님을 배정해주는 것이 보편적 현상이지만
그래도 업무담당부서가 해야할 일은 여전히 많다.
디지털기기를 관리할 때 제일 힘들었던 일 중 한 가지가 바로 업데이트였다.
일괄적으로 업데이트를 하려면 하루 수업 진행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어서
나는 주말에 알바생들과 함께 업데이트를 진행하곤 했는데(기기가 무지 많은 학교에 근무했었다.)
그때는 주말 초과근무도 올리지 않고 하는 바보였었다.
물론 아들 친구들이었던 그때 당시 대학생 알바들의 점심과 수당은 다 내돈내산이었다.
결코 나를 쫓아 이런 방식으로 일하면 안된다.
지속가능한 방법이 아니다만 그때는 그렇게해야 업무가 유지되었을 때였다.
그런데 똑같이 똑같은 방법으로 업데이트 오케이를 눌러도
똑같이 세팅되어 있는 디바이스마다 완료까지 걸리는 시간도 다르고
심지어 어떤 것은 실패 메시지가 뜨기도 하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가 정보부 업무를 하는 나의 신조였는데
도대체 걔가 안되는 이유를 찾지 못하겠으니 말이다.
2015년 이야기이다.
지금은 이럴 확률이 아주 낮다.
그 사이 우리나라의 디지털기기 구성과 작동 등
관련 부수적인 능력은 비약적으로 발달하였고
모든 학교에서 디지털기기를 사용하게 되었고
무언가 오류가 생기면 디바이스를 보내서 수리해주는 시스템도 완비되었다.
그 중심에는 코로나19 시기의 온라인 수업의 영향이 지대했다. 위기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아주 가끔은.
휴대폰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는 그 시간 동안
내 삶도 시스템 업데이트를 주기적으로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5년에 한번씩 내 삶의 시스템 업데이트가 이루어진다면
그 사이에 욕하고 미워했던 사람에 대한 생각도 몽땅 사라지고
가슴 아픈 실패나 마음 상했던 기억들도 몽땅 없어지고
특히 다치고 아팠던 왼쪽 무릎이나 목이나 어깨가 새로 태어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다치기 이전 수준이나 내 나이 평균값으로 리셋되는 것 말이다.
만약 그런 시스템 업데이트가 가능하다고 하다면
<업데이트를 하시겠습니까?> 메시지가 뜬다면
나는 과연 주저없이 오케이 버튼을 누를 것인가?
물론 과거를 지우는 지우개와
업데이트는 다른 개념이기는 하다만.
이런 쓸데없는 상상과 고민을 잠시 했더니
휴대폰 업데이트가 끝났다고 메시지가 뜬다.
뭐라뭐라 10가지 정도의 새로운 기능이 탑재되었다는데 안내는 건성으로 읽고 다음 다음만 눌렀다.
새 기능도 중요한데 기존의 잘 되던 기능만 유지되어도 사는데 별 문제는 없다.
휴대폰이고 내 몸과 마음이고 말이다.
시스템 업데이트 말고 시스템 유지만 되어도 말이다.
그런데 내 새로운 한 주 시작은 업데이트가 필요하긴 할 것 같다.
1월은 너무 늘어진 삶이었는데 이제 딱 한 주가 남았다.
정신을 차려보자.
(국립중앙과학관 앞에는 하천이 있고 거기를 건너는 돌다리가 이곳 저곳 놓여있었다. 아이들은 폴짝 폴짝 저기를 건너던데 나는 혹시 미끄러질까봐 무서워서 시도를 못했다. 여름에는 한번 건너보리라. 그래서 그날 샅샅이 구경하지는 않았었다. 꼭 다시 조만간 올 것을 기약하려고 말이다. 어줍잖은 핑계거리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