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반응 그 이후

오눌의 액땜 끝.

by 태생적 오지라퍼

말이 씨가 된다고는 흔히 이야기한다.

그래서 취소 퇴퇴퇴도 많이 해봤다만

이제 글도 씨가 되는 시대가 된것인지 아니면 나만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다.

하긴 말이나 글이나 모두 내 뇌에서 발현되는 것이니

똑같이 취급되어지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동네 하나뿐인 슈퍼에서 떨어진 노트북 자판 키를 부착시키려고 순간 접착제를 샀고

한 바퀴 돌다가 순전히 남편 취향인 야채를 가득 사가지고 돌아왔다.

쓰레기도 분리수거했고 이제 자판만 고치면 된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말이다.

6개월쯤 전 접착제로 수리에 성공했던 경험도 있고 해서 말이다.

물론 6개월만에 재발했지만.

그런데 새로 산 접착제가 안 나온다.

추위에 얼었나보다 생각하고 미지근한 물에 담갔다가 해봐도 안나온다.

생각해보니 포장을 뜯을 때 무언가 떨어지는 느낌이 났었는데

그게 막힌 입구를 뚫어주는 바늘이었나보다 싶어 주위를 둘러보는데 도통 안보인다.

급한 마음에 집에 있던 바느질용 바늘을 꼽는 순간 사단이 났다.

눈에는 안보이는데 접착제가 새어나왔나보다.

바늘이 들러붙고 그 바늘을 잡고 있는 내 엄지와 둘째 손가락이 들러붙는다.

이 사단이 발생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초도 안된다.

아차 싶어서(비닐 장갑을 끼고 만졌어야 하는데 너무 우습게 생각한 나의 안전불감증이다.)

재빨리 물을 틀어놓고 바늘과 손을 분리하는데 성공했는데

그 3초도 안되는 시간에 피부는 약간 거칠어졌다.

순간이다. 순간접착제가 맞다.


할 수 없이 손을 여러번 씻을겸 사온 야채를 세척한다.

얼갈이배추를 씻어서 반은 된장국을 끓이고

나머지 반은 쌈용으로 보관하고

샐러드용 아기채소도

낫또에 김싸서 올려먹으려고 산 무순도

영양가 만점이라는 조선부추도 잘 씻어 잘게 잘라 정리해둔다만(비빔밥에 넣어먹고 부추전 예정이다.)

아무리 닦아도 닦아도 한번 접착제가 닿은

엄지와 둘째손가락 윗부분의 흔적은 말끔하게 지워지지 않는다.

며칠 지나야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우여곡절을 겪고 올려둔 자판의 S자 키는 왜 내 손가락처럼 철커덕 달라붙지 않는 것이냐?

오히려 그 키를 빼고 치는 것이 백배는 더 편하니

도대체 나는 뭔 짓을 한 것이냐?

두번째 시도로 아까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도 같다만.

세상살이 참으로 사소한 것들이 나를 힘들게도 한다.


이런 저런 연쇄 반응 중에 야채를 왕창 씻어두었는데 남편은 갑자기 라면이 드시고 싶단다.

꼬들라면 말이다.

지난 주 짜파게티를 먹고 혈당 쇼크가 왔던 일도 있었는데 말이다.

나를 편하게 해주려 그런다고 말은 하는데

된장국도 끓여두었고 야채도 다 준비했고 밥은 있는데

다시 라면을 끓여먹자는게 나를 도와주는거

점심을 간단히 먹는거 맞는 것일까?

저녁 준비까지 미리 댕겨서 마쳤다고

그렇게 생각하련다.

그리고 나서 다시 책상에 앉으니 아까 못찾았던

절대 안보이던 순간접착제용 바늘꽂이가 종이 위에

얌전히 올려져 있는게 아닌가?

아이고야 뚜껑 열리기 직전이다.


(슈퍼 개장 시간을 몰라서 그림을 그리면서 대기했었다. 올해 눈은 봤는데 눈사람은 못봤다.

대신 그림으로 그려봤다. 눈사람 만들 체력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만들 수 있을때 만들어보시라.

눈오리는 손주가 태어나면 함께 만들어볼 의향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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