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선택이란 없다.
드라마보다 스포츠를 좋아하니 관심 기사가 눈에 띄기 마련이다.
막 따뜻한 외국에서 시즌을 시작한 골프 뉴스도 보고
(우리나라 선수들 파이팅이다. 외국에서 시합을 뛰는 모두가 국가대표이다.)
외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난 야구단 유튜브도 보고
(요새는 전지훈련에 구단 유튜브 제작자들도 함께 하는 추세이다. 그만큼 구독자들이 많아졌다는 현상을 반영한 것 일게다.)
시간에 여유가 있으니 이것저것 모두 살펴는 본다.
찾아보는 것까지는 하지 않지만.
그 중에 아마도 이번주 안에 결판이 나지 않을까 싶은 이슈는 단연 A 야구 선수의 거취이다.
비슷한 상황의 B 선수는 한달쯤 전 스스로 은퇴를 선언했고
갑작스러운 은퇴에 본인도 울고 팬들도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다만
어제 방송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치열한 운동과는 거리가 먼 푹 쉬는 자연인으로의 모습이 보였었다만
물론 마음으로는 그도 아직 은퇴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새 시즌이 시작해봐야
개막전에 나서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고나서야
비로소 은퇴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나도 그랬었다.
그런데 아직 A 선수는 자의로 은퇴를 하고 싶지는 않은데
조건이 맞는 구단이 없어서 계약을 못한채로 미아가 되어 있는 형편이다.
그 마음도 충분히 알겠다.
나처럼 법적인 조건에 따라 그만두어야 하는 직종도 아니고
자신의 생각에는 아직도 체력이나 기술이나 현역에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고
작년에는 부상 등의 이슈로 실력 발휘를 못했을 뿐이라는 생각도 들고
이대로 불명예 퇴진을 하고 싶지는 않다고
아마도 입술을 수천번 깨물고 있을 것이다.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비슷한 나이와 경력의 A, B 두 선수의 선택은 180도 다르다만
어느 쪽이 더 행복한 올해를 보낼 것인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A 선수도 이왕지사 이리된 거
모양새는 조금 빠지더라도 올 한해
어디든 선수로서의 마지막 불꽃을 활활 태우고
멋진 은퇴를 하면 좋겠다.
사실 멋진 은퇴란 없을지도 모른다만.
선택의 갈림길은 그렇게 가혹하기도 하다.
남편은 꼭 열흘 전쯤 내가 일을 보러 서울에 가고 없었던 날.
11시쯤 옥수수빵을 두 개 먹고 13시에 짜파게티를 하나 먹은 후
추운데 얇게 입고 집을 나섰다가
쇼크 현상과 열이 나서 간신히 귀가한 전력이 있다.
그리고 항암을 다녀와서는 임플란트와 금이빨 떼운 것이 모두 빠지는 일이 이틀전에 일어났다.
그러므로 열흘 전 그 상태가
혈당 쇼크인지 감기 증상이었는지 아니면
치통 때문이었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치과는 내일 예약을 해두었다.
그런데 오늘은 다시 짜파게티를 점심으로 먹고 싶다한다.
물론 11시에 빵은 먹지 않겠다 한다.
마음에 내키지는 않고(어제도 점심으로 라면을 먹었다. 물론 원한 것이다.) 걱정이 되기는 하나
짜파게티면에 각종 야채를 듬뿍 넣고 춘장으로 맛을 낸 소스를 부어 주었더니
면을 다 먹고 밥까지 추가로 말아서 먹었다.
그리고는 산책을 나가보겠다 한다.
아마도 그날의 검증을 해보고 싶은 마음과
이틀간 추위로 집안에서 실내 자전거만 탔던 운동부족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나보다.
어쩌겠나. 본인의 선택이다.
말려도 되지 않는 똥고집인 것을 잘 안다.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한 결과를 자신이 감당할 수 있으면 된다만.
다행히 오늘 추위는 덜했고 오후 햇빛이 그나마 따스했으며
남편은 아무런 컨디션 이상 없이 귀가했다.
그러면서 혈당 이슈는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알 수 없다. 그때와 오늘은 조건이 다르다.
어떤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을지도 알 수 없다.
세부 조건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여하튼 무사히 돌아왔으니 되었다.
1일 1그림을 수행하는 중이다.
방학 중 심심할 때니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중학교때까지 예뻐라 했던 스누피 캐릭터와
현재 내 이쁨을 독차지 하고 있는 고양이 설이를 그려보았다.
설이가 자꾸 뚱뚱하고 이상하게 그려진다.
그림에서는 볼품없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설이를 선택할 것이다.
요새 다시 살아나고 있는 스누피의 인기를 잘 알고 있다만 나에게는 설이가 최고이다.
나와 눈맞추어주고 소통하려고 하는 유일한 생명체이니 말이다.
이런 쉬운 난이도의 선택만 있다면 굳이 갈림길이라는 표현도 필요없을 것이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제발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지고 답을 강요하는 그런 일은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
선택은 자신의 의지이지만
갈림길에 서는 것은 타의에 의한 것도 종종 있다.
그것이 종교에서 말하는 시험에 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제발 시험에 들지말게 하옵소서.
시험이 아니라도 세상살이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