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해야할 일이라는 각인

뇌 컨디션 체크하기

by 태생적 오지라퍼

꼭 해야할 일이라는 것은 내 머릿속에 어떻게 각인되는 것일까?

오늘은 이런 이런 일을 처리해야한다고

탁상 달력에도 휴대폰 일정표에도 기록해두기는 한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맣게 잊어버리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아직은 중요한 것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일 매일 습관처럼 루틴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어떤 것은 각인이 되고 또 어떤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 그 결정적인 차이점은 무엇일까?

순전히 내가 생각하는 중요도 랭킹이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떤 것은 기억이 너무도 선명하고

어떤 것은 적어놓은 것을 보고서야 떠올리게 될 리는 없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 각인된 제일 큰 업무는 약속 시간이다.

약속 시간에 늦었던 기억이 거의 없다.

30여분은 먼저 도착해서 근처를 배회하다가 들어가는게 일상적이다.

요즈음은 추워서 그리 하다가는 감기가 걸리거나

(코가 맹맹한지는 꽤 되었다.)

아니면 괜히 커피값만 추가 지출하게 되기 마련인데

그렇게 해야만 마음이 편하니 어쩔 수 없다.

만남의 장소가 익숙한 곳이 아니면 길치인 내 상태를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시간 약속을 잘 안지키는 사람은 내 지인 명단에서 1차로 탈락하는 사람이다. 아니다.

지인 명단에 넣어주지도 않는다.

시간에 늦어서 비행기를 못 탔다거나 기차를 놓쳤다거나 하는 일은 솔직히 이해되지 않는다.

천재지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오늘의 시간 약속은 식탁 배송 13시밖에는 없다.


어제 월요일 8시는 무언의 약속이 있는 듯 없는 듯 그런 시간이었다.

내 최애 <불꽃야구> 유튜브 영상이 올라올지 아닐지 확실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예고가 없었으니 안 올라오는게 기본인데도 마냥 기대하고 있는 나는 덕후가 맞다.

확실하면 기다리는데 조바심이 덜 나는데

확실하지 않으니 계속 조바심이 나는데다가

3달만에 골프 연습 30여분을 하고 와서인지

초저녁부터 졸려오기 시작한다.

그때 잠깐 자면 밤을 꼬박 세우게 될지도 몰라서

눈을 비벼대면서 영상을 기다려본다.

나같은 덕후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듯

아마추어로 야구를 시작한 선수의 프로 선수 도전기 영상이 올라오기는 했다만 엄청 짧다.

그것을 보고 나니 더더욱 졸리다.

꼭 해야할 일이 없다고 뇌가 파악한 모양이다.


내 뇌이지만 100프로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는 것은 아닌것 같고 무언가의 정교한 오토매틱 시스템이 작동한다.

도대체 꼭 해야할 일이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을 내리는 뇌의 기작은 무엇인가?

하고 싶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을 두부 자르듯이 순식간에 결정하는 뇌의 매카니즘은 무엇일까?

기억해야만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그룹핑하는 뇌의 능력에 놀라울뿐이다.

아마도 다시 공부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1순위로 뇌과학을 선택할 것 같다만

뇌를 대상으로 한 연구와 실험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한번 해봤다. 몰랐으니 도전한 것이다.

박사 논문에서 뇌파검사를 활용해서 학습하는 순간의 변화를 실험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신한 연구이기는 했다만

고생이 많았다.


이제 내가 해야할 일의 범주에 골프 연습을 하나 추가한다.

어제 3달만에 연습을 하러 갔더니

장갑을 오른손에 끼는 것인지 왼손인지 조차 기억이 분명하지 않아서 그냥 양쪽 다 꼈다.

골프도 아마 향후 2년 정도가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한다.

몸도 그렇지만 뇌를 활발하게 사용할 시간도 고작 2년 남았다는 뜻이다.

강의 첫 시간에 사용할 설문 두 종류(과학 관련, AI 관련) 자료를 찾아서 구체화해보고

식탁을 받고 기존 식탁을 이동시키고(부수적인 일이 생길 것만 같다는 예감이다.)

이빨 임플란트 시술을 받아 불편함이 있는 남편을 위한 부드러운 음식을 준비하고

집을 비우는 목, 금요일 먹거리도 준비해두고

오늘 할 일이 딱딱 떠오르는 것을 보니 오늘 뇌 컨디션 최상이다.

나를 비롯한 모두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

치매일 것이다.

아침마다 뇌 컨디션을 체크해본다.

브레인 포그 상태가 되지 않았는지를 말이다.


(제주 동백꽃 사진을 골랐다. 금요일 부산에도 동백이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작가의 이전글하나씩 정리해나가는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