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할만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벌써 부산역에 내려서
기장에 위치한 과학관으로 가서
학회 발표를 듣고 있었어야 마땅하다만
어제 전화 한 통으로 순식간에 일정이 바뀌었고
나는 또다시 기차여행 중이다.
오늘은 영등포역에 내리는 무궁화호이다.
어제와 같은 점은
또 간발의 차이로 앞 기차를 놓쳤다는 점.
오늘은 앞에 서있던 두 어르신만 없었다면 가능했는데 말이다.
남은 시간동안 가끔먹는 맛밤을 하나 사고
인터뷰때 목 막힐까봐 생수도 하나 사고
(요새 자꾸 침이 기도로 꼴깍 넘어가곤 한다.)
어제 후배가 선물로 준 사탕도 챙겼다.
무궁화호라 서는 역들이 많다만
의자 간격은 넓고
가방 걸이도 있고
창틀이 팔을 기댈수 있을 정도로 넓다.
오늘처럼 시간에 여유가 있는 날은 나쁘지 않다.
옆 자리도 비어가니 널직하고 좋다.
서울에 도착하면 마그네틱이 고장난 카드 수리를 위하여 백화점을 방문해야만 한다.
근처 사는 동생과 점심을 같이 먹자 해두었으니
오랫만에 수다삼매경을 떨면 되겠다.
아픈 동생 얼굴도 보고 말이다.
뚜렷한 결과는 없지만
이리저리 구경 다니는 이런 일도
없는것보다는 낫다.
오늘 읽은 글 중에 와닿는것은
나와 딱 맞는 케이스인
<은퇴후 살살아픔>으로 시작되는 은퇴신드롬이라는 현상이다.
은퇴는 그만큼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라는 뜻이다.
은퇴심리학에 따르면.
따라서 별일 아닌데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게 치료법 중 한가지란다.
그런 의미에서 나 잘하고 있는걸까?
아직은 엄청 춥다 정도는 아닌데
저녁이 문제일 듯 하다.
그런데 수원역쯤 오면 그제서야 졸린다.
이상타. 수원역이면 다온건데 말이다.
(어제도 그림을 못 그려서 오늘 아침 재빨리 두 장을 그렸다. 한 장은 옛날 전화기 나머지 한 장은 꽃병에 담긴 꽃이다. 둘 다 지금 현재 내가 바라는 바를 담은 것이다. 좋은 소식의 전화를 기다리고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현실에서는 꽃 대신 대파랑 당근만 물에 꽂아두었다만. 남편 점심으로는 닭갈비볶음밥과 홍합미역국을 뎁혀 먹으라 준비해놓고 나왔는데 영 물가에 내놓은 아기 수준이다. 어제 저녁도 라면을 끓여먹는걸 나에게 딱 들켰다. 나도 자주 안 먹는데 항암하는 환자가 그래서야 될까 싶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