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내 몸 어디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겠냐만
나는 발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꼈던 적이 없었던 듯 하다.
일단 여자 발치고는 너무 크고 길고 못생겼다.
그래서 여름에도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지 않았고
오늘처럼 불의의 사고를 만날때만 아이코야 하고 관심을 가져준 경험만 몇 번 있다.
복숭아뼈 주변을 다쳤던 기억이 몇 번 난다.
사진을 찍고보니 익숙한 것으로 보아 그때도 오늘처럼 오른쪽이었던 것 같다.
혹시 나빠질까 몰라서 일단 다치면 사진을 찍어둔다.
과학적 사고의 발현이다.
내 신체의 취약 지구에 기록해둔다.
현재는 왼쪽 어깨와 무릎과
오른쪽 엄지손가락이었는데 하나 더 추가해둔다.
어떻게 된 것인지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그림으로 그려봤더니 이해는 쉬운데
지독하게 못생긴 발임이라는게 한눈에 요약 정리가 된다.
과학 공부도 이렇게 그림을 그려서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
Drawing Science 이다.
물론 발목이 저렇게 뒤틀린 것은 아니다.
발목은 전혀 생각없이 그린 것이다.
내 그림의 수준이 그렇다.
사고 경위는 다음과 같다.
의자에 앉아서 브런치글을 쓰다가 갑자기 손톱이 길고 청결하지 못한 것이 보여서
화장대에 있는 손톱깍기를 찾아오려고 일어났는데
오른쪽 발바닥 아랫쪽에 쥐가 나면서
발을 제대로 딛지 못하고(순간 다리 마비인줄)
균형을 못잡고 발라당 넘어졌다.
천만 다행히도 다른 곳에 머리나 몸을 부딪히지는 않았고
그 순간 복숭아뼈 부근에 삐거덕 소리가 조금 났고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는 발가락을 주물러대고
파스를 뿌리고 무릎 보호대로 고정을 시켜두었다.
운동하면서 다리를 많이 접질려본 아들 녀석의 조언대로
얼음을 수건에 감아서 찬찜질도 시도했고
티비를 보는 동안은 다리를 높은데 올려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충격을 받은 것 자체는 어쩔 수 없으니
당분간은 그 부분을 딛는데는 삐그덕 거릴 것을 감수해야만 한다.
살짝 부었고 멍들었고 붉게 보인다만
주말이라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닌듯 하고
아마 문 연 병원도 없을 것이다.
이 정도로 바쁜 응급실에 가는건 예의가 아니다.
그림을 그리고 보니 오른쪽발이 참 안되었다 싶다.
엄지 발가락 옆은 튀어나와있지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발가락 사이에는 티눈이 호시탐탐 세력을 넓히려 하고 있지
발등에 있는 혈관들은 왜 그리도 튀어나와서
발 그림만 봐도 나이를 체감하게 하는 것인지 참으로 안되었다.
60년 이상 내 체중을 받쳐주고 뛰어다녔으니 힘들때도 되었다만.
뜨거운 물에 발을 푹 담가둬봐야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가뜩이나 부상을 당해서 기분이 나쁜데
또 남편이 나를 긁어댄다.
다리 근육량이 없어서라면서 운동을 하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건강에 신경을 쓰면 아프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아니 그러면 아픈 사람은 모두 다 건강에 신경을 안썼다는 말이냐?
신경을 엄청 쓰고 조심해도 유전이건 무언가가 안맞건 여하튼 다치거나 아픈 사람도 엄청 많다.
본인은 더 크게 아프면서 나에게 자꾸 훈계를 한다.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말이 위로하는 방법을 못 배운 남편의 위로법이라는 것을 말이다.
막내 동생이 알려주었다.
지난번에는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화가 치솟았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대화법 특강이 있다면 남편을 보내고 싶다.
그 시대 남자들이 다 그렇지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만
(우리 시대에도 로맨티스트나 와이프에게 잘하는 남편들도 많다.)
할 수 없다. 내가 남편의 화법을 번역해서 잘 알아들어야 할 수 밖에.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멋지게 생긴 통역사는 필요없고
AI가 속뜻을 알려주는 어플리케이션이 있으면 사용할 용의는 있다.
오늘 부상투혼 중이다.
강의 첫 시간에 사용할 과학에 대한 태도 검사지와
AI 활용 교육 기초 검사지를 정리하고 있다.
지독하게 못생긴 내 발에게는 강제 휴식을 부여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