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은 항상 어릴때에 머물러 있다.
결혼해서는 구정 전날이면
시댁 제사 음식 만들기와 시댁 내려가기(가깝기는 했다만. 수원)
그곳에서 구정 전날부터 자고 먹고 음식하고 아들 녀석 케어하기(Feat. 남편은 친구만난다고 놀러나가기)
구정 점심까지 차려드리고서야 친정집 가기
막상 친정집에 가면 정신이 몽롱해서 그냥 마냥
퍼져 누워있기가 기본 매뉴얼이었다.
아마 보는 엄마는 속이 상하셨을게다.
결혼 전 구정 전날이 되면 엄마는 매번 이마에
긴 수건을 묶곤 하셨다.
이것은 두통이 날만큼 기분이 나쁘다는 뜻이었다.
엄마 눈치 보면서 전부치기, 알아서 조용 조용 찾아먹기, 절대 배고프다 무언가 먹고 싶다 등의 이야기는 하지 않기 등이 형제들간의 불문율이었다.
그리고 제사 음식이 대충 마무리 되었다 싶으면
집 앞 목욕탕으로 총출동을 했다.
새해가 되기 전에 묵은 때를 씻겨내야 한다면서 말이다.
어떨 때는 머리도 잘랐다.
그날은 미용실도 손님이 만원이라 평소보다 대충대충 머리를 잘라줘서 어떨때는 뒷머리에 까치집이 생기기도 했다만.
그날 목욕탕은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로 당연히 발 디딜틈이 없었다.
그 시대의 목욕탕은 그 동네 최고의 핫플이었던 셈이다.
어지저찌 사람반 물반의 목욕탕에서 목욕을 간신히 마치고 나면
새빨개진 볼로 나와서 목욕탕에서 파는 초콜릿 우유나 요구르트 하나를 까먹곤 했다.
명절 전 날 일종의 특식인 셈이다.
엄청 맛났다. 갈증 해소와 피로 회복에 짱이다.
나는 요구르트파(그때 말로는 야쿠르트다.)였다.
초콜릿 우유가 걸찍하고 달아서 별로였다.
나중에 나온 바나나 우유나 커피 우유는 맛났다만.
머리 자르기와 목욕하기는 새 몸 새 기분으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결연한 의식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의식을 마치고나면 기운이 펄펄 나서 방청소도 하고 책상 정리도 하고 뜬금없이
옷 정리도 하고 새해 계획표도 정성껏 적어보는
새해맞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오늘 뜬금없이 옛집 앞 2분 거리에 있던 그 목욕탕 주변 그림이 떠오른다.
머리를 잘랐던 미용실도 말이다.
물론 옛날 추억의 그 집도 말이다.
그저께 봤던 조치원 어느 골목집 사진을 찍어서
(빈 집인듯 했다.)
오늘 그림으로 그려봤는데
옛날 초창기 화곡동집과 구조가 비슷하기는 하다.
그런데 대문 색깔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빨간 대문은 아니었는데.
아마 총명한 막내동생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만
일단 그냥 파란 대문으로 칠한다.
그런데 명절 전날이라 더욱 바빴던 그 분들과 비슷한 분들이 지금도 있더라.
이곳 단지 앞 미장원도 어제 오늘 영업을 계속하고 있고(지나다가 보니 손님이 꽤 있더라.)
며칠 전 가래떡 사진을 SNS에 올렸더니
방앗간에서 갓 나온 가래떡 이야기가 댓글로 달렸는데
얼마만에 들어본 방앗간이라는 단어였는지 모른다.
아마 오늘 바쁠 것이다. 몇 곳 남아있지는 않겠지만.
오전에 아들 녀석이 먹고 싶다던 탕국을 조금 끓이고
잡채에 들어갈 것들을 준비해놓고
소고기와 돼지갈비를 냉장실로 옮겨두고
청소기를 돌리고 남편 운동화를 빨아놓고 머리를 감았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는 못 자르지만
(토요일에 염색 및 파마를 예약해두었다.)
목욕탕에 가서 때를 빡빡 밀지는 못하지만
(이사와서 커뮤니티센터에 사우나가 없는 것이 아쉬운 점 중 한가지이다.)
나름의 세신을 하고 아들 녀석 맞을 준비를 완료한다.
고양이 설이는 아들 녀석이 올 줄은 꿈에도 모르고 낮잠 중이다.
그래.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다가 설 선물처럼 오빠를 만나는 것이 좋겠다.
그것보다 더 멋진 명절 선물이 뭐가 있겠냐.
너에게나 나에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