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같은 하루

새로운 학기를 잘 보내보자.

by 태생적 오지라퍼

운 좋게 대체휴일이라 공식적인 방학일 휴일이

하루가 더 생긴 셈이다.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하루이지만

긴 시간 삼시세끼 밥 차리기와 치다꺼리에 고생한 부모님들께는

마지막 마지노선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번 학기 대학은 월, 화 수업인데

오늘은 대체휴일에 내일은 입학식 관계로

1학년의 수업이 여의치 않으므로

대학 수업은 다음 주부터 시작이고

목요일 고등학교 수업으로 이번 학기를 스타트하게 된다.

그런데 아직 마음은 평온하다.

전업으로 일하는 것과 마음이 다르고

처음하는 일과 두 번째 하는 일과의 마음이 다르다.

사람 마음이 그리 자동으로 간사한 법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처음 하는 일이 가장 준비도 많이 하고

가장 소중하고 위대한 법이다.

신규 선생님들은 지금 엄청 가슴이 콩닥콩닥 뛰면서

수업 및 기타 여러가지를 준비 중이실거다.

지금의 마음을 꼭 기억하시라.


대학졸업이 1985년 2월 25일.

첫 학교 발령일이 같은 날이었고

그리고는 3월 1일자 신규교사였으니

학생에서 교사로 신분 변환이 일어난 것은 정말 순간이었다.

첫 학교가 집에서 거리상으로는 그리 먼 곳은 아니었으나

한번에 가는 버스가 없어서 버스를 갈아타고 다녀야했고

(출근길 갈아타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졌었다.)

버스에서 내려서는 언덕길을 십여분 올라가야했는데

그 길을 빠르게 올라가다보면 정문쯤에서는 긴 호흡이 나오기 일쑤였고

학생들을 만날때쯤엔 볼빨간 얼굴이 되곤 했다.

그리고 3월의 학교는 여전히 춥기만 했다.

아마 내일도 추울 것이다.

체감상으로는 더욱 그럴것이다.

대학생이 된 친구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아니다. 초중고 학생들 모두에 해당된다.)

학교는 무지 춥다는 점이다.

교실은 난방덕에 그리고 체온 덕에 괜찮을 수 있는데

오랜 방학동안 비어있었던 복도와 특별교실들에서는 냉기가 뿜어나온다.

새 학기 새 출발 멋을 부리고 얇은 봄옷 차림으로 갔다가는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감기에 걸리기 딱 좋다.

개학 직후에 호흡기 질환이 다시 유행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는 아직 겨울옷들을 정리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교사 첫 해 일주일을 보내고(그때는 토요일도 오전 수업을 할 때이다.)

일요일에 끙끙 앓았더랬다.

약속이 있었는데 물론 나갈 수가 없었다.

아마도 한 달 정도 일요일은 거의 누워지냈던 것 같다.

체력과 정신력이 모두 제로베이스가 되는 한주일을 어찌저찌 버텨내는 날들이었다.

3월은 그렇게 교사 생활 내내 힘들고도 긴 달이었다.

3월이 한가하고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작년 퇴직 이후부터 였고

이제 나는 심심하다고 투정을 부리게 되었으니

참 학교란 존재가 이리 거대하기만 하다.


올해 마지막 학교에서 내가 첫해 담임한 녀석들은 고3이 되었고

마지막 담임한 녀석들은 고2,

그리고 마지막 해 수업한 녀석들은 고1이 되었다.

마지막 해 수업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학생들을 목요일마다 만나게 되는 셈이다.

귀엽고 잘 웃고 자랑과 뽐내기를 좋아하던

그 녀석들이다.

물론 지역이 달라서 내가 목요일에 나가 수업할

그 학교에는 그 녀석들은 없겠지만

그들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어려운 과학을 어렵지 않게 소개해보겠다.

며칠 전 만났던 고2가 되는 녀석들이 자신들이 수능을 보기 한달 전쯤

통합과학 족집게 과외를 해주시면 안되겠냐고 우스꽝스러운 질문을 했었다.

그 바쁘고 중요한 시기에 나를 생각해낸다는 것은

과학교사로 신뢰하고 있다는 뜻으로 자의적인 해석을 했다.

이제 고등학생인 녀석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학업이 가장 우선인 시기이다.

그 어렵고 힘든 시기의 시작인 3월.

그들에게 어렵고 힘든 시기를 버틸 힘을 줄 선물 같은 하루가 오늘이 되기를 희망한다.

내가 띵커벨처럼 그들 머리 위에 에너지를 뿅하고 떨어트려 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만

마음 속으로 기원만 한다.

나도 오늘 하루 맛난 것을 먹고 준비하고 쉬면서

가열차게 달릴 준비를 해야겠다.

내일은 모든 학교 관계자들의 정신이 쏙 빠지는

그런 날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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