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부러운 것이 절대 아니다.
수요일 오백년만의 아들 녀석과
기분 좋은 저녁을 먹고
에어컨 렌탈 견적을 받아서
천호역에서 오목교역까지 긴 거리를 지하철을 타고
(이제 그 정도 거리는 긴 거리 축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예전이었으면 엄청 긴 거리라고 힘들어했을텐데
이제는 조치원에서 서울까지의 기차 시간 정도가
긴 거리의 기준값이 된다.)
익숙한 목동 거리에 접어들었을 때
자꾸 눈에 거슬리는 일이 눈에 뜨인다.
왜 내 앞에서 자꾸 그러는 것이냐?
눈을 피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길을 돌아가기에는
이미 시간이 너무 늦었고 몸이 피곤했다.
이 글도 쓸까말까 하루 이상 고민하다가
일단 늙은이 노파심이 발동한다.
물론 그 시기의 젊은이들이 이 글을 읽을 확률은 매우 낮다만.
일단 내가 잘 아는(위치도 알고 심지어 현재 그 학교 교장님이 지인이다.)
고등학교 이름이 박힌 후드 잠바를 입었다.
그리고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고 눈을 맞추고
입도 맞추고 사방을 만져댄다.
적극성의 정도는 여학생이 더 하다.
유동인구가 엄청 많은 장소와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근처에는 학원 밀집가라 그 학교 친구나 선후배들도 엄청 많았을 것이고
아마 그 두 명의 부모님 지인들도 제법 지나갈 확률이 있는데도
그런 거침없는 애정 행각의 수준과 빈도에
이 늙은이는 놀라울 뿐이었다.
자연스러운 애정표현. 멋진 거 안다.
영화나 외국에서 나도 봤다.
물론 나는 못해봤다만.
그런데 그 수준이라는 것이 있고
미성년자는 아니고 주민등록증이 나왔을지는 모르겠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낏흘낏 쳐다보는 그 시선을 즐기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과.했.다.
적어도 학교 이름이 커다랗게 박힌 그 옷을 입고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대학교 과잠을 입고 그래도 눈길이 갈텐데
High School 이 딱 박힌 옷이다.
그래도 지인인 그 학교 현재 교장님에게 귀뜸은 하지 않을 예정이다.
어쩌겠나. 방과후 개인 생활인데 말이다.
그런데 그 정도라면 학교에서도 애정행각을 감출 수는 없을 듯하다.
아마 소문이 나도 벌써 났을 것이다.
어제 수업을 한 고등학교는 남녀 합반이 아니었다.
남녀 합반이 아닌 경우는 근 30여년만에 처음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만
(학교 개설할때의 여러 가지 생각이 반영된 것일게다.)
지금도 학부모님들은 남녀 합반으로의 변경을 별로 좋아라하지 않으신다고 한다.
좋아라하신다면 바뀌었을 것이다.
왜 일까?
아마도 내가 보았던 그런 애정 행각이 한창 공부에 몰두해야할 시기의 내 자녀에게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시기를 지나본 사람으로서 그러다가는
학업이 폭망할지도 모른다는 꽤 높은 확률과
기시감이 드는게 사실이다.
자신이 해보지 않아도 주변에 그런 케이스가 몇몇은 있어서 보기는 다 봤기 때문이다.
정말 오랜만에 본 남학생반과 여학생반의 수업 분위기는 정말 달랐고
그 분위기가 좋은 쪽으로 작용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그렇게 학급을 나누어 놓아도
운명적인 만남을 할 사람은 다 만나고
또 그러다가 헤어지고 그렇게 추억을 만든다.
좋아하는, 관심가는 사람이 생긴다는 일은
메말랐던 내 인생에 단비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갑자기 주변이 환해지고 모든 일이 즐거워지고 24시간이 48시간으로 변하는 마법이 벌어진다.
그런데 숨길 수 없는 그 사랑의 표현을 조금은
조심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 아닐까?
공공장소에서는 말이다.
아니 적어도 학교 잠바를 입고서는 말이다.
세상은 좋은 시선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은 SNS 홍수의 시대라는 것을
조금은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들은 이 밀려오는 관종의 시대를 즐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렇게라도 동네방네 입소문을 내서
내 사랑을 굳건하게 만들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는 내가 부적응자이자 꼰대일 확률이 매우 높다만.
그들의 젊음과 사랑이 부러워서 쓰는 글은 절대 아니다.
아들 녀석의 여자 친구 생기기 기원은 계속된다만
아들 녀석의 공공 장소 애정 행각은 지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