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계획 세우기를 좋아라하고
(쓸데없이 계획만 세우고 실행은 되지 않는 경우도 물론 매우 많았다. 계획 세우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하기도 했다.)
무계획적이나 계획이 틀어지거나
우발적으로 무언가를 진행하는 상황에는
두려움이나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만
이제 이 나이가 되니 <그럴수도 있지, 그렇게라도 해볼까>하는 생각이 조금은 들기도 한다.
이전까지는 제일 싫어하는 말이 <그럴수도 있지> 였다.
미리 미리 준비하면 <그럴수도 있지>라는
회피형 이야기는 절대 할 일이 없다는 그런
젊은 나이만의 자신만만함이 있었던 거다.
그 말은 나에게는 최선을 다하지 않고 핑계를 대는 말로만 들려서 화가 무지 나기도 했었다.
이제는 아무리 해도 안되는 정말 <그럴수도 있지>라고 이야기하면서
나 자신을 다독여야만 하는 그런 경우도 있다는 것 쯤은 안다.
어제 늦은 오후에 공장에서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계획대로라면 월요일 항암 주사일을 맞아
일요일 오후 늦게 나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서
저녁을 먹고 쉬면서 월요일 병원행을 대기하는 것이 계획이었다.
적어도 2주일전에 나와 함께 합의한 계획이었고
그 일정에 따라 기차표도 예매해두었었다.
그런데 혹시 하고 어제 저녁을 먹으면서 토요일 일정을 물어보니
쭈뼛거리면서 서울에서 점심 약속이 방금 생겼다고 한다.
아무리 남편이 좋아라하는 그리고 자주 사용하는 <그럴수도 있지>라고 이해해보려해도
월요일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항암일을 앞두고는 충분히 쉬어주는 것이 맞는 듯한데
토요일에 서울 갔다가 내려왔다가
다시 일요일에 서울에 가는 그런 일정은 아닌 듯 싶다.
그리고 아무리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전혀 계획적이지 않은
(내 생각으로는 이해도 되지 않는)
남편의 이런 형태의 우발적인 선택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가 불러주기만 하면 나간다.
친구가 그리 많은 줄은 새삼스럽다.
아들 녀석이 꼭 닮았다.
친구 많은 것과 친구 좋아라 하는 것은.
마치 내 생애 마지막 만남인 것처럼 만남을 약속한다.
그리고 그 일들은 전혀 계획적이지 않고 매우 우발적이다.
꼭 만나야하면 일요일에 서울에 어차피 올라가니
그 날 만나는 약속을 잡아도 되는데 말이다.
물론 내가 남편과 똑 같은 항암을 하는 입장이 되어보지는 않았다만
나고 갑상선암 수술을 하고 힘든 시기를 보냈었고
그 때의 나는 모든 약속을 최소한으로 하고
학교일과 휴식으로만 지냈던 터라
지금 남편의 행보와는 전혀 다른 방법이었다.
그렇게 생각의 방향성이 나와 너무도 다르다.
어쩌겠나.
사람 다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끌리는 방향대로 사는 것을.
몸이 못 견뎌서 집에서 꼼짝 못하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라고 생각하련다.
나처럼 지나치게 계획적이어서 사실 크게 잘된 일도 없다 생각하련다.
위기 상황을 조금은 힘들지 않게 지나갔을지는 모르지만.
한번 사는 인생.
계획적이든 우발적이든 건강하게 착하게만 살면 된다.
회복 중이었던 어제의 나에서
회복이 끝난 오늘의 내가 하루를 시작한다.
(어제 그림같은 인천대교에서 바라본 일몰 사진이다. 물론 후배 사진이다. 나는 어제 하루 종일 집콕 모드였다. 인천공항 가는 길. 바람불면 차가 흔들리는 대교 위 운전도 이제는 그립기만 하다. 외국가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은 드는 요즈음이다. 다음 해 겨울에는 따뜻한 곳을 가볼까나? 아픈 남편이 마음에 걸려서 계획 세우기가 힘들다만. 이야기하면 분명 쿨하게 다녀오라할터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