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함하다 : 갑작스레 몹시 놀라거나 아프거나 하여 넋을 잃는 것
아침도 빠르게 많이 먹고
내 방식의 야구 응원을 위해
아침부터 골프 연습장에도 다녀왔고(물론 효력은 1도 없었다만)
다음 주 월, 화, 목 강의 자료도 다 만들었고
지난 주 학생들의 패들렛 산출물 다운도 다 받았고
해야 할 일을 다했으니 봄꽃 구경이나 가야겠다 싶었다.
아침도 많이 먹었는데 점심까지도 푸지게 먹고 나니
갑작스런 과식으로 뱃속이 약간 꿀꿀거리는 것도 같아서 말이다.
이럴 때는 걷는게 최고였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집에 있다가는 무기력하게 누울지도 모르고
그러면 소화가 더 힘들어진다는 것쯤은 굳이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어도 알만한 상식이다.
오늘이 마침 조치원 시장의 장날이기도 하니
슬슬 돌아보고는 프리지아 꽃 한단을 사가지고 오겠다 생각을 했다.
다음 주 친정 엄마 생신날이 있고
그 다음 주는 엄마 기일이라
좋아하셨던 꽃이라 꽂아두고 싶어서였다.
매년 이 즈음에 프리지아 꽃 선물을 드리곤 했었다.
소화제가 구비되어 있지 않은 듯하여 그것도 준비할 겸 말이다.
그런데 시내까지 걸어가는 동안
아무리 눈을 똥그랗게 뜨고 살펴봐도 산수유 빼고는 꽃이 핀 나무들이 보이지는 않아서 많이 아쉬웠고
그나마 꽃 핀 산수유도 사진에 멋지게 찍히지 않아
더 아쉬웠다.
약간 불편한 배를 위해서 소화제를 먹고는
현금이 하나도 없는 지갑을 위하여 현금을 조금 찾아서 은행을 나섰고
그때까지는 야구가 너무 형편없이 져서 속상함만 조금 있었다.
뭔가 한방은 보여주고 졌으면 했었으니까.
그런데 은행을 나선 뒤 얼마되지 않아
내가 찾은 현금만큼의 입금이 되었다고 메시지가 뜬다.
나에게 돈을 보낼 사람이나 기관이 없을텐데 더구나 오늘은 휴일인데.
요새 이상한 입금이 되면서 계좌가 막히기도 한다던데.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아뿔싸.
돈을 찾아서 내가 그 돈을 들지도 않고 그대로 은행을 나섰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뒤져봐도 현금이라고는 없다.
뭐 이런 바보가 다있나? 기함할 노릇이다.
다시 입금되었다는건 누군가가 그 현금을 들고가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아까 그 시간에 입출금 기계 앞에는 다행이 나만 있었다.
마침 횡단보도를 막 건넜을 뿐이어서 재빨리 다시 길을 건나 은행으로 돌진한다.
내가 출금을 거래했던 그 기계는 오류라는 메시지와 함께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돈이 나왔다가 얼마 지나고서도 돈을 빼지 않으면 저절로 취소 처리가 되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그리고 다른 누구가 이 내용을 인지하지 못하게
오류 처리라고 얼마동안 작동한다는 것을 이번에서야 알았다.
갑자기 온 몸이 더워지고 머리에도 땀이 송글 맺힌다.
바보가 따로 없다.
혹시 싶어서 다시 그 옆 창구에서 인출을 시도하고
잔액을 확인하는 것으로 기함할 뻔한 일을 간신히
마무리했다.
그러고 나니 장날 물건 구경이 눈에 들어올리 없다.
아까 불편감을 느꼈던 배는 무언가 훅 내려간 느낌이다.
프리지아나 사가지고 돌아오려는데
분명 그곳쯤 있었던 것 같은 꽃집이 안보인다.
할 수 없다 싶어서 아무것도 사지 않고 포기하고 길을 건넜는데
마침 장날이라 프리지아를 단으로 쌓아놓고 임시로 파는 분이 계셨다.
다행이다.
한 단을 사서 소중히 끌어안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는 와중에
아까 약국에서 소화제를 마실 때 병뚜껑을 한 번에
잘 못 열어서 약사님이 열어줬던 일과
다 쓰러져가는 복권방에서 졸고 계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현금 인출을 제대로 못한 내 얼굴과 오버랩되어 보인다.
10,000보 걷기는 달성했다만
내 머릿속의 지우개는 어찌 할 것이냐?
(집에 다와서쯤 지나가던 분이 프리지아를 어디서 샀냐고 물으신다.
이곳에 오래 사신 분이실텐데 그 분도 꽃집을 모르는구나 싶으니 안심이 조금은 된다.
집에 와서 꽃을 화병에 꽂아두고는
복권방에서 그 졸고 계시던 할아버지에게 산 1,000원짜리 복권 두 장을 긁어보니 둘 다 1,000원 당첨이다.
이 확률이었으면 2,000원 짜리나 로또를 샀어야하나,
아싸. 기함할 뻔했으나 안한 운 좋은 점심 산책이다. 결과는 그러하다.
그러나 이런 행운이 항상 함께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정신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