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하루의 시작이다
내가 잠을 설치는 이유는 그때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이유는 딱 두 가지이다.
초저녁에 졸음이 올 때를 그냥 넘겼을 때와
기분이 몹시 상했거나 걱정이나 질병 등의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이다.
어제는 둘 다에 해당했으려나.
여하튼 잠을 설쳐서 중간에 여러번 깼고
화장실을 두 번이나 다녀왔고
그리고도 한참을 다시 잠들지 못했고
결국 가뿐하지 못하게 오늘 이제야 일어났다.
쉽지 않은 하루의 시작이다.
발단은 초저녁 잠이 쏟아질 때 온 전화 한통이다.
연락이 이어지고 있는 몇 명 안되는 대학 동창이다.
대학 동창 중 몇 명은 SNS 상의로만 안부를 서로 지켜보고 있고
유일하게 이 친구만 가끔 아주 가끔
자기가 나를 필요로 할 때만 전화를 한다.
그래서 가끔 울리는 전화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물론 대학 동창들 단톡이 있기는 하다만
자녀들의 결혼식 안내장 역할 정도만 하고 있다.
내가 무언가를 올릴 기회는 아직 없었다.
어찌 보면 그 친구는 대학때 부터 나를 호구로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학 때도 소개팅 및 기타 본인의 현안을
여러 번 해결해주기는 했었다.
지난 일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쭉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연락을 해온 시점도
본인이 박사과정을 하면서
과학 교육 관련 논문이 필요한데 함께 그 일을 해 줄 사람이 필요한 관계로
연락을 슬그머니 했었고
나는 또 오지랖을 발휘해서 그 일을 함께 했고
전공과 관련해서 그 일을 도와줄만한 주변 인맥을 소개해주었고
그 이후로 박사과정을 함께 한 후배들까지도 일을 도와주라면서
그 친구에게 소개해주었으니 말이다.
그 이후로 사람 좋다는 이야기를 소개해준 사람들에게 듣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가끔 서울에 출장을 와서 시간이 빌 때면 나에게 연락을 해서 만남을 당당하게 요구하곤 했다.
미리도 아니고 꼭 하루 이틀 전에 자신의 동선에 맞추어서 말이다.
별일이 없으면 나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몇번은 들어주었다.
남편이 대장암으로 많이 아파서 고생하고 있는 것을
그리고 전공 업무에 대한 여러가지 정치적인 셈법이 작용하는 것도 알았고
하나뿐인 아들 녀석도 살뜰하게 엄마와 사이가 좋은 것 같지도 않다는 이야기도 애둘러 들었기 때문이다.
정년퇴직 후 그녀가 권고한 과학단체모임에 가입한 것은
비슷한 관심거리의 소통 그룹이 필요해서 눈여겨 보고 있던 곳이어서 였다만
정치적인 성향이 너무 강하고
기존 회원들끼리의 자부심이 엄청 강한 듯해서
행사 때 한번 가보고는 안갔고
올해까지만 후원하고 그만해야겠다고 생각중이다.
나와는 결이 맞지 않는다.
물론 유명한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을
회원으로 확보하고는 있다만
그들은 바빠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랬는데 어제 갑자기 전화해서는
(물론 그 친구의 전화는 항상 뜬금없이 온다만)
이번 수요일에 자기가 서울 근처에 일이 있고
1시에서 6시까지 시간이 빈단다.
고로 자기와 놀아달라는 뜻이다.
이틀전인데 말이다.
다음 주 수요일이라면 생각을 해볼 수도 있다만.
어쩌라고.
나는 이제 서울에 살지도 않고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수요일에 서울에 간다만 해야할 일과 약속이 있고
(그것들을 포기하면 얼굴을 볼 수는 있겠다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고)
자신에게는 엄청 일이 많이 들어와서 몹시 바쁘다고 하고
(놀리는것인가? 나는 강의 이외에 엄청 한가하다만.)
대장암으로 고생한 남편이 죽은 후 홀가분하게 집을 정리하고 싶다고 하고
(나는 위암으로 남편이 지금 고생중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여하튼 초저녁잠이 마구 쏟아지는 하필 그 시점에 전화를 해서 자기 이야기만 20여분을 쏟아놓았다.
내 잠은 이미 다 달아났고
일이 많다는 점이 부럽고
대전 집을 팔고 서울로 이사 예정 중이라는 점도
몹시 부러웠다.
여하튼 그 전화 이후로
본격적으로 자는데까지 시간이 걸렸고
중간에 자꾸 깼고
여하튼 지금 이 시간의 늦은 아침의 기상이
상쾌하지 않고 힘든 것의 9할은
그녀의 어제 밤 전화때문이라 핑계를 대본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한편 드는 생각은
<그 친구도 나처럼 외롭구나
하루에 한번도 누구와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구나
혼자 먹는 밥에 질렸구나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나였구나>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그동안 호구처럼 당했다고 생각한 일들이 그럭저럭 넘어가진다.
나도 나를 대우해주고 대접해주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일에 소홀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면서 이 아침을 시작한다.
그런데 하루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나는 먹는 것보다 잠이 더 중요한 이상한 스타일이다.
오늘은 목련꽃의 개화나 기다려보련다.
거의 다 온 듯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