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찾기에 망했다

선택은 망하면 안되는데

by 태생적 오지라퍼

잠을 설쳐서 아침 출발이 꿉꿉한 것 치고는

강의는 매끄럽게 잘 진행되었고

올해 첫 번째로 <재미있었어요. > 라는 강의평을 들었다만(내가 제일 좋아라 하는 이야기이다.)

퇴근길 길 찾기에 망했다.

늘상 오는 길로 다음 주 심사 아르바이트 하나도 확보하고는

룰루랄라 간식용 빵도 먹으면서 퇴근길을 달리고 있었는데

내비언니가 갑자기 다른 길로 안내를 한다.

확신에 찬 내비언니의 안내에

혹시 내가 늘상 퇴근하는 길에 사고라도 났는가 싶어서

내비 언니말대로 움직였다가

결국 길을 못찾아서 한번 빠져나가는 길목을 놓치고(공사중이어서 표시가 잘 안보였다.)

또 한번 놓치고 결국은 유턴을 해서 돌아오느라

15분 정도의 내 피같은 시간을 길에다 낭비하고

금값인 기름도 낭비하고

이쁜 설이를 만날 시간도 늦어졌으니

오호 통재라.

그래도 오늘 길목 신호에 걸려 정차할 때 일몰 사진

두 장을 재빨리 찍은 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태국 일주일 출장에 다녀온 아들 녀석이 내일

대체 휴가를 쓴다해서

서울에 올라가는 김에 기차 시간을 앞당겨서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다.

생각만으로도 콧노래가 나온다.

물론 밥값은 내가 낼 확률이 99.9%이다만

얼굴이라도 보여준다는게 어디냐.

피곤해서 자겠다해도 할 말은 없으니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생애 가장 후하게 범위를 제공하는 사람은 아들이다.

그리고 그 아들 녀석에게는 늘상 미안한 마음이 우선이다.

좀 더 편안하게 일생을 보낼 수 있게

든든한 배가 되어주지 못하는 것에 말이다.

흙수저는 아닐지 몰라도 은수저는 되게 해주고 싶었는데 말이다.

결혼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경제력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어 더더욱 그렇다.


내일 아들 녀석과 점심을 먹고는

두달마다 받는 혈압약을 받으러 병원에 가야하고

목요일 수업에 보조 자료로 사용할 태양관측 안경도 받아야하고

줄이 끊어진 팔찌도 고쳐야 하고

22일이면 마감한다는 꼭 보고 싶은 전시도 봐야하고

이른 저녁에는 옛 학교 동료들과의 저녁도 먹어야 한다만

그 사이 사이에 혹시 목요일 강의안을 추가 수정해야할 일이 있을까 싶어서

노트북을 들고 올라갈까말까 고민 중이다.

아들 녀석과의 약속 장소는 지하철역 내려서 바로이니 걱정없고

병원도 자료를 받는 학교도 역 근처이다만

전시를 노트북이 들어간 무거운 가방을 들고 볼수는 없는데

전시관에 아마도 짐보관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처음 하는 내용의 강의는 이래저래 고민과 선택의 순간이 있는데

아직 딱 떨어지게 마음을 결정하지는 못했다.

조금 더 깊게 설명할지 아니면 딱 기본만 할지의 문제이다.

세상 살면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일은 다반사다만

수업의 난이도를 결정하는 일은 매번 어렵다.

내 수업만 듣고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더더욱 그렇다.

고등학교와 중학교 강의와의 차이점이자

고등학교와 대학교 강의와의 차이점이다.

조금만 더 고민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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