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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생적 오지라퍼 May 29. 2024

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38

수성사인펜과 유성사인펜

어제 체육한마당의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줄다리기, 기타 레크레이션 수준의 경기와 이어달리기 정도를 진행했는데도

아그들은 거의 좀비처럼 어그적 거리고 걸어다녔다.

사방이 쑤시고 댕긴다면서 근육통을 호소한다.

안쓰던 근육을 썼으니 근육통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과학적으로 설명해주었나 그다지 설득력은 없는듯 했다.

갑자기 온 몸에 힘을 주고 달리고 공을 피하고 하는 일을 했으니 며칠간은 당연히 몸이 아플 것인데

그래서 그런지 수업을 하기 싫어하는 눈치이다.

그럴 줄 알고 가장 난이도가 낮은 크로마토그래피 실험을 준비했다.


아주 옛날 옛날에

옆집 고등학교 오빠를 짝사랑하던 여중생이 있었더랜다.

아침 등굣길마다 매일 마주치는 그 오빠에게

어느날 정성을 다해서 편지를 썼고 옆집 우체통에 간신히 넣었는데

그 우체통에서 마당으로 빠진 편지가 마침 내리는 비에 젖어

무지개색이 되고 내용은 하나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수성사인펜으로 쓴 편지의 비극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따라서 손편지는 꼭 유성사인펜으로 써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물론 내 이야기는 절대 아니라고 강조했다.


물로 열심히 빨아도 안 지워지는 옷에 묻은 자국은

결국 세탁소에 보내서 드라이크리닝 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알코올 종류의 용매를 사용하여 기름에 녹는 자국을 제거하는 것이라고도 이야기해주었다.

그런데 드라이크리닝을 모르는 눈치였다.

하긴 세탁소에 옷을 맡기러 가본 적이 한번도 없었을 수 있다.

손편지도 써본 적도 별로 없는 눈치였다.

요새는 어버이날, 스승의 날에 강요하는 편지쓰기 등도 하지않는다.

요새 누가 손편지를 쓰겠나, 카톡이나 DM을 보내지.

그래서 어떤 과학 현상과 딱맞는 예를 드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리고 그 예는 수업하는 시기와 대상에 잘 어울리는 것이어야 한다.

예를 잘 제시하면 이해도는 높아지나 다소의 오개념이 생길 수도 있다.

예전에는 교육학적으로 오개념이 더 나쁜 것처럼 배웠으나

나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비슷하게라도 이해하는 것이

아예 모르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크로마토그래피 실험 세팅 후 교과서 정리를 할 시간을 주고

실험 결과를 보고 다시 교과서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것으로

체육대회 다음날 수업은 조금은 쉽게 쉽게 진행해주었다.

크로마토그래피 원리 및 결과 분석은 다음 시간에 계속되고

그 뒤를 이어서는 음주 측정, 마약 검사, 흡연 검사, 혈흔 반응 등을 다루는

[나는 과학수사반]이라는 글쓰기가 이어진다.

아마도 이 내용을 배우면 국과수나 국과수가 등장하는 드라마가 생각날 것이다.

나는 한때 법의학과 관련된 미드를 열심히 보았고 지금도 추리만화나 과학수사 드라마 장르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것은 나의 수업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일수도 있다.

괴도 루팡, 탐정 코난,  비밀의 숲, 천원짜리 변호사, 수사반장, 그리고 007 시리즈를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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