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짝사랑 전공이다.(4)

대학 1학년의 회고

by 태생적 오지라퍼

대학 신입생은 인생의 최고 황금기일지 모른다.

나이로 보나 마음 상태로 보나 더 멋진 시기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처음 맞부딪히는 것들에 대한 당혹감이 몰려 오는 시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위험한 위기의 시기일지도 모른다.


대학 1학년 겨울이었다.

아마도 11월 내 생일 즈음이었나보다.

그 당시 국민학교 동창생들이 심심하면 모이던

아지트 본다방이 있었다.

당시 유행이던 음악 틀어주는 DJ오빠도 있었고

커피 배달하는 언니도 있었고

계란 노른자 탁 깨트려 올린 쌍화차나 대추차도 있던

말 그대로 90년대 시골 다방이었다.

젊은이들이라고는 나의 국민학교 동창 십여명 뿐.

그들은 나에게 친근하기 짝이 없는 친구들이었는데

(요즈음 말로 남사친이다.)

내가 모르는 친구들을 데려와서

점점 그 세력을 늘려가기 시작했고

(화곡동 인근 대학생들이 다 몰려올 판이었다.)

그때 새롭게 등장한 인물 중 한 명이 L군이었다.

잘 생긴건 아니었는데

키는 작지 않았고 살이 찌지는 않은

그리고 조용한 K대 공대생이었다.

그렇게 조용하나 신비롭게 내 눈에 띈지

한달쯤 지 내 생일날 즈음이었다.


그날따라 본다방에는 걔(L군)와 나 그리고 DJ 오빠만 있었는데

갑자기 나와 걔에게 심부름을 시키는거다.

한 정거장쯤 가서 뭔가 조금 무거운 것을 가져다 달랬는데(그때쯤 그 정도의 친밀감이 있었던 때다.)

그냥 그러겠다했고

(대낮이었으니 갔다온다했을거다. 밤이면 안갔다.)

거기를 뻘쭘하게 걸어 갔다오는데

나에게 생일선물이라면서 탄생석 반지를 내밀었고

가타부타 말은 없었는데 그걸 받았으니

이제 남사친에서 남친이 된건가 싶긴했다.


엄마에게는 차마 말을 하지 못하는 2주일 정도가 지났을까?

갑자기 자주 연락을 하던 걔의 연락이 뜸해진다.

그 사이 기말고사라 따로 만난적도 없는데

장학금 받을만큼 시험을 잘보고 만나기로 했었는데 말이다.

무언가 쎄한 느낌끝에

기말고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사이에 국민학교 반창회를 했고

거기서 꿈에 그리던 첫 사랑을 운명처럼 만났고

커플이 되기로 했단다.

아마 전화통보였던것 같다.

어쩌겠나.

난 이제 막 짝사랑에서 사랑을 시작해볼까 했고

내 탄생석이 토파즈라는것을 알았고

겨울방학을 기다렸는데 말이다.

2주일의 꿈은 그렇게 막을 내렸고

(꼴랑 아무것도 없던 2주일이었는데

회복하는데는 2달은 걸린듯 하다.)

나는 본다방에 더 이상 가지 않았고

(갈 수 없었다는게 맞다.)

그 반지는 어느 수채구멍엔가 던져 버렸던 것 같다.

쪼그맣고 앙증맞게 이쁘긴했는데 말이다.

(오늘 방금 골목 귀퉁이에서 본

저 꽃 색깔과 저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