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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53

시험을 보는 것은 마무리일까?

by 태생적 오지라퍼

3일간의 짧은 기말고사 기간이 오늘로 모두 끝났다.

학생들은 시원할 것이고 교사들은 섭섭할 수도 있다.

유일하게 개인 업무 등을 보러 갈 수 있는 여유 시간이 있는 날들이 고사 기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조퇴를 사용한다.

그러나 평소에는 조퇴를 한다고 해도 수업을 다하고 조퇴가 가능하므로

점심부터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날은 쉽지 않다.

그래서 교사들에게는 고사 기간이 더욱 소중하다.

그러나 그런 소중함 못지 않게 고사 기간에는 부담감이 작용한다.

내 과목의 시험이 아무 사고 없이 잘 마무리 되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번 주 계속 배가 살살 아팠는데 아마도 시험 문제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시험이 무사히 끝나고 나니 배가 안 아픈 듯 한 것을 보면 말이다.


언제부터인가(중1 자유학기제를 도입하면서 부터인 것 같다.)

중학교에서의 시험은 희망과목만 보는 것이 되었다.

전체 성적을 모두 수행평가로만 해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물론 교과 교사의 협의가 있어야하지만...

우리학교처럼 소규모의 형태일 경우 한 학년을 교사 1명이 담당하니

내가 마음만 먹으면 1년 내내 과학시험을 안볼수도 있는 것이다.

수행평가가 더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교사도 있을 수 있겠으나 사실 그렇지는 않다.

시험문항을 출제하고 오류를 검토하고 또 검토하고 하는 과정은 진이 빠지는 일이다.

나 같은 경우 2주일 정도를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맑은 정신으로 시험 문항을 검토했다.

경력이 많아질수록 시험 문항 출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안 좋은 문항의 사례를 많이 보게 되는 관계로 출제가 어려운 일이 되는 듯 하다.

그래서 수능출제교사도 서로 기피하곤 한다. 잘해야 본전이니 말이다.

일부 과목 저경력 교사들은 한번도 시험 문항을 출제해보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

그 업무의 어려움을 알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람은 모두가 똑같다.

1학기가 지났으면 한번쯤은 중요한 것들을 시험보는 일이 꼭 필요하다.

딱히 기능 중심의 교과가 아니라면 말이다.

다행하게도 2학년 과학 시험은 모두가 웃으면서 마무리 되었다.

수업 내용만 잘 들었으면 나쁘지 않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게 기본에 충실한 문항만 출제하였기 때문이다.


오늘은 1교시 과학시험을 무사히 끝내고(복도에서 이상여부를 확인하면서 1시간을 대기한다.)

2교시는 음악시험 부감독을 했다. 한 교실에 2명의 시감이 입실한다.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서이다.

음악교과는 사실 시험을 보지 않는 교사도 많다.

가끔 감상 위주의 시험을 보기도 하는데 우리학교는 3학년만 시험을 본다.

이렇게라도 시험을 본다고 해야 클래식이나 가곡의 명곡을 들어라도 보지

아니면 최신 가요나 팝 빼놓고는 귀에 익숙한 노래가 없지 싶어서

우리학교 음악 선생님의 노고를 칭찬하고 싶어졌다.

덕분에 나도 옛날 기분을 내면서 음악 감상에 빠져들었다.

요새는 음악 실기 가창 시험도 안보겠다고 하면 최소한의 점수만 부여받고 보지 않기도 한다.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익히고 합창을 해보는 그런 경험도 웬만해서는 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힘들어하고 싫어하면 슬그머니 하지 않게 되어버리는 경향이 많다.

그것이 학생을 배려한 것이라고 생각하나보다. 그러나 어쩌랴.

이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수는 없을텐데,

그렇게 사는 사람은 몇 안될텐데,

그러니 조금은 어렵고 하기 힘들어도 한번 도전해보고 시도해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연습이 이루어져야 할텐데,

그 일을 하는 곳이 학교일텐데...

그래서 말인데 시험은 꼭 필요하다. 그리고 시험도 연습이 꼭 필요하다.

회복탄력성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성공 경험을 느껴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기말고사를 마무리한 학생들이여.. 오늘만큼은 푹 쉬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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