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부르니 걱정이 생긴다.
요새 자꾸 급식이 맘에 안드는 것을 보니
2학기에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녀야하나
마지막 학기인데 다른 사람이 해주는 밥을 불평없이 먹어야 하나
작은 고민이 생겼다.
물론 후자로 결정할 확률이 99퍼센트일 것 같지만 말이다.
오늘은 비빔국수가 메인요리였다.
열무김치, 오이를 얹은 비빔국수가 뭐가 불평인가 물어보겠지만 불만의 핵심은 국수였다.
많은 양에 불어터진 국수가 맘에 안든 것이다.
4교시 수업이 없는 날이라 11시 30분에 식당으로 내려갔다.
12시 30분에 내려간 날이면 그래 늦었으니 불어터질만도 하고 이랬을터인데
11시 30분은 교사 급식 시작 시간인데 이미 국수가 한참은 불어터져 있다.
급식인데 그럴 수밖에 없지라고 생각하다가도
11시 30분에 이건 아니지 도대체 국수를 언제 삶은 건가 궁금해졌다.
다른 음식을 먼저 다 준비하고 가장 마지막으로 국수를 삶는다면
11시 30분에 이렇게 딱딱해질 수는 없다.
차마 급식실에 물어보지는 못했다. 늙은이 꼰대짓이라고 할게 분명해서 이다.
그리고 이렇게 대량 급식이라 국수가 불어터질것으로 예상했다면
멸치 육수나 오뎅 국물이라고 놓아두면 국물을 조금 넣고 국수를 비빌수 있을 것인데 그런 준비가 영 없었다.
급식을 내가 운영하는 식당 음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는 못할 것 같은데 말이다.(그런 마인드를 요구하기에는 급식비는 너무 저렴하고 관련 업종 종사자 수당은 엄청 작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또 족발이 함께 나왔는데 애쓴다고 반반 족발 두 종류를 준비한 것 같은데
비빔장으로 비빔국수를 만들었는데 갑자기 비슷한 양념에 버무린 족발이 또 나온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음식관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래저래 오늘 점심도 디저트로 나온 수박이 제일 맛있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나는 내가 만든 음식보다도 맛이 없으면 화가 나는 쫌생이 기질이 있다.
오늘 그 기질이 제대로 발동된 날이었다.
점심을 조금밖에 못먹으면 퇴근길에 배가 고파온다.
저녁 약속이 있다던 아들이 비가 많이 올 것 같다고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 일찍 온다하니 마음이 더 바빴다.
오늘 냉장고에는 밑반찬을 제외하고는 김치찜과 달걀말이 준비물밖에는 없었다.
얇은 돼지고기 세 줄 넣고 양파, 대파, 마늘과 신김치 세 조각 넣어 푹 끓이고 달걀 세 개를 풀어 달걀말이를 만들었다. 완벽한 3-3-3의 조화였다.
김치찜에는 역시 흰 밥이 최고다.
평소에는 잡곡을 넣어 먹지만 김치찜이라서 오늘은 백미로만 준비했다.
그래야 남은 국물에 밥 비벼 먹는 것까지 완벽하게 된다.
디저트로는 황도 복숭아 1개에 자두 1개, 1+1이다. 둘다 훌륭했다.
점심을 맛없게 먹어서 더 배고팠던 차라 별거없는 저녁 식사에 만족감이 충만하다.
나는 밥과 김치만으로도 맛있으면 행복한 소박한 사람이다.
그런데 왜 급식은 나의 소박함을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것일까? 요새는 너무 자주이다.
설거지도 하고 샤워도 끝내고 배가 부르니 잡생각이 난다.
아들녀석은 왜 소개팅을 안하겠다는 것일까?
가뜩이나 나이먹고 밥 많이 먹어 배도 나오는 것 같은데 말이다.
그리고 왜 저녁 식사때부터 지금까지 <그때 우리는> 같은 풋풋한 청춘 드라마는 왜 돌려보고 있는걸까?
아들 녀석의 옆 얼굴에 갑자기 오늘 먹으려다 남긴 점심의 퉁퉁 불은 비빔국수가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아들 녀석의 사라져간 연애 DNA도 걱정되고
며칠 폭식으로 부쩍 나온 아들의 뱃살도 걱정되고
그 옆에 누운 고양이 설이의 눈꼽도 걱정되는 배부른 저녁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