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어쩔 수 없는 우리 엄마의 딸이다.
돌아가신 친정엄마는 김치욕심이 많으셨다. 딱히 요리를 잘 하신 것도 음식 하는 것을 좋아하신 스타일도 아니셨는데 다른 것보다 김치는 늘 풍족히 있는 것을 희망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김장을 담기 위해 배추 백포기 정도를 씻으면서 너무 힘들고 손 시렵고 추워서 훌쩍거리면서 울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없는 살림에 김치라도 넉넉히 만들어두면 찌개도 하고 찜도 하고 겨울을 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셨을 듯 하다. 나는 그 때 이후였는지 김치를 담아먹는 것에 대한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않고 – 아니 의도적으로 피했을 수도 있다 - 열심히 사서 먹었다. 그러나 김치를 좋아하는 본성만은 그대로 친정엄마에게 물려받은 듯 어느 곳에서나 어느 음식과 함께이거나 김치를 찾았다. 외국에 가서는 김치가 없는 식사에 너무 힘들어했고 맛난 김치가 없는 식사는 아무리 유명한 식당이어도 개인적으로 별표를 후하게 주는 것에 인색했다.
그러던 내게 몇 년 전부터 의도치 않게 김치를 담가야 하는 기회가 주어지기 시작했다. 학생들과 텃밭에 작물을 키워야 했는데 가을에는 배추랑 무 등의 김장 작물을 키우게 되었고 키우고 수확했으니 김치를 담아야만 했다. 처음에는 가정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한쪽에는 돼지고기 수육을 삶고(사실은 수육을 삶는 것도 처음이었다.) 김치를 많이 담아본 표정으로 학생들과 열심히 김치를 담았는데 그 때 그 김치의 상큼함에 놀랐다. 아마도 직접 키운 작물의 싱싱함이 그 맛의 8할이었던 것 같았고 김치를 담는 것이 그리 어려운 고행의 길이 아님을 확인한 만족감이 나머지 2할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 이후로 나는 적은 양의 각종 김치를 담아보기 시작했다. 나의 김치 욕심은 친정엄마와는 다르게 많은 양이 아니라 다양한 김치 종류에 포커스가 맞추어 진 것 같다. 파김치, 부추 김치, 순무 김치, 부산 고모가 담아주신 장게 김치(우리는 이렇게 불렀다. 대구 아가미젓갈과 무를 잘게 썰어서 담근 김치이다.)를 즐겨 먹다가 요사이는 고수 김치와 바질 김치를 담아먹었다. 물론 소량이다. 내 개인 취향으로는 고수 김치와 삼겹살 구이가 찰떡 궁합이었고 비빔국수와 파김치도 항상 취향 저격이다. 사과와 감을 무와 함께 깍두기처럼 김치를 담아보는 특강도 들어보았는데 김치 재료와 양념을 빡빡 문지르지 말고 살살 달래라는 채소들도 스트레스를 받는 다는 강사의 이야기가 기억에 오래 남았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채소를 키워보면 식물도 많은 스트레스와 힘듬을 견디고 살아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농사의 어려움과 소중함도 저절로 느끼게 된다. 딱딱하고 추운 겨울을 견디고 비바람을 뚫고서 살아나가면서 우리에게 맛난 음식들을 제공해주는 식물 예찬이 결코 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러면서 김장 김치에 진심이었던 돌아가신 친정 엄마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오늘은 친정 엄마가 가신지 3주년 되는 날이었다. 엄마라는 자리가 얼마나 힘든 것이지를 실감하는 요즈음이라서 그런지 더더욱 친정엄마와 엄마의 김치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