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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60

너무 헤비한 실험을 골랐나보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오늘은 2학년의 방학 전 마지막 실험이자 2학기에 포함되는 수행평가일이다.

예고한대로 혈액 관찰 실험인데 엄밀히 말하면 혈액 중의 혈구 관찰이다.

오늘의 관건은 프레파라트 제작이다.

왼손 마지막 손가락에서 살짝 채혈한 혈액 한 방울에 생리식염수 한 방울과 에탄올 한방울을 떨구고

4분 정도 기다려주고 백혈구의 핵 염색을 위한 김자액을 한방울 떨구고 또 4분 정도 기다려 준다.

이후 여러 번의 세척을 통해 염색약을 빼주고 나서 커버글라스를 엎으면 프레파라트 제작은 완료된다.

프레파라트를 잘 만들어야 현미경 관찰이 성공적이 된다.


학생들은 일단 채혈과정에서 아수라장이 된다.

어느 반은 서로 자기가 채혈을 하겠다고 난리이고 어느 반은 서로 안하겠다고 눈치만 본다.

학급별로 성향 차가 여실히 드러난다.

나의 손과 눈은 매우 바쁘다.

채혈침도 갈아줘야하고(오늘은 이 부분을 과학실무사 선생님께서 도와주셨다.)

개인별로 잘 만들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수행평가이니 친구의 도움은 안된다.)

또 채혈 전과 후에 소독을 꼼꼼하게 하고 밴드를 붙여준 후

지혈이 되었음을 확인하면서 오늘의 혈액 제공 도우미들에게는 과자 2개도 지급해주어야 한다.

이후에는 자신이 만든 프레파라트로 현미경을 통해 적혈구와 백혈구를 관찰하게 된다.


학생들은 계속 질문을 해댄다.

왜 내 피는 검은색으로 보이냐, 다른 사람은 피가 조금밖에 안나는데 나는 왜 많이 나오냐 등등등...

사람마다 혈액의 농도와 색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안심을 시킨다.

또 질문을 해댄다.

약품을 한 방울만 넣어도 되는거냐, 혈액이 다 씻겨 내려간 것 같은데 괜찮은거냐, 나는 붉은색이 이제 아예 안보인다. 등등등...

이럴 때 나는 극단적인 예를 들어준다.

어느 범죄 현장에서 범죄자가 피해자의 혈액을 물로 깨끗이 씻으면 혈액은 모두 없어졌을 것인가?

아니다. 소량은 남게 되고 특정한 반응을 통하면 다 찾을 수 있다.

걱정말아라.

너의 프레파라트에서 적혈구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백혈구는 없을 수도 있다. 너무 소량이므로...

지난번 전문가 혈액에서는 적혈구가 붉은 색으로 잘 보였는데 왜 오늘은 붉게 보이지 않는거냐?

진하게 보이는 것들은 무엇이냐... 온통 진한 보라색만 보이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 등등등...

에탄올로 탈색을 했으니 그럴 수밖에, 진하게 보이는 것은 백혈구의 핵이 염색된 것이라고 지난 시간에 알려주었건만, 진한 보라색만 보이는 것은 세척을 적게 해서 염색약이 너무 많이 남아있는 것이니 한방울만 넣으라 했을텐데...

이전 시간의 설명은 모두 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것임에 틀림없다.


역시 자기 혈액으로 실험을 하니 질문이 많고 관심이 많다.

우리 생활에 밀접한 것이 주제일수록 관심은 많고 질문도 많고 열심히 참여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늘 자신의 적혈구를 관찰한 것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일 수도 있다.

과학 실험이 그런 것이다.

전공자가 되기 전에는 모든 실험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다.

내가 열심히 실험 수업을 해주는 제일 중요한 이유이다.

너무 많은 질문에 소리를 질러댔더니 목이 많이 아프다.

방학직전인데 너무 헤비한 실험을 골랐나 잠시 후회도 했지만 현미경보던김에 보는게 낫지 다 잊어버린후 또 볼수는 없다.

제발 설명해준 것의 반의 반 만이라도 기억해주기를 소망해본다.

그러나 그럴리는 없다.

교사라는 직업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꿀일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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