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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골목 투어 열 여덟번째

대학병원 오가는 길

by 태생적 오지라퍼

오늘은 골목이라고 하기에는 그런 곳에 다녀왔다.

15년 전 나는 건강검진 끝에 꽤 진행된 갑상선암을 발견했다.

사실 그 이전에 뼈 떨리게 춥고, 먹어도 먹어도 기운이 안 나고 마구 졸리는 증상들이 있기는 했으나

무리해서 신경쓸 일이 많아서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발견되고 한달쯤 지난 추석 휴가기간동안 수술을 받았고

바닥을 친 체력을 회복하는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양한 수술 전 검사를 받고 수술을 받고 걱정하면서 퇴원하고

그 이후로 3개월, 6개월, 1년에 한 번씩 검진을 받으려 방문하는 곳이 있다.

검진이 끝나고 나면 결과를 들으러 또 방문해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약의 용량이 결정되어 진다.

그리고 그 결과가 괜찮으면 나에게는 1년이라는 시간이 더 주어진 것처럼

마냥 행복해지고 누군가에게 감사해진다.

바로 모 대학병원과 그 주변 약국까지의 골목이 그곳이다.


오늘이 바로 2024년의 검사하는 그 날이다.

혈액검사가 있으니 어제 8시 이후에는 금식이었다.

대부분 그 시간 이후에는 평소에도 잘 먹지는 않으나

못 먹는다 생각하면 배고픈 그 이상한 현상이 역시나 찾아왔다.

그리고 검사일이 다가오면 괜히 가슴도 이상한 것 같고

목도 조이는 것 같은 이해하지 못할 병리적 현상에 시달리게 된다.

물론 멘탈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참 제어가 되지는 않는다.

수술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렇다.


병원에 가는 사람치고 기분이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지만

오늘 아침은 꿀꿀한 기분으로 시작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려고 생각했으나 비가 언제 쏟아질지 몰라

어젯밤 갑자기 차를 가지고 움직여야지 생각했는데 길이 막혀도 너무 막히는 거다.

대충 아는 길인데 혹시 몰라서 내비게이션을 켰고 빅데이터와 실시간 현황을 반영하는 AI를 굳게 믿었으나

막혀도 너무 막힐게 뻔한 쪽으로 나를 인도하는거다.(먹통이 된 것일까? 짜증을 내비에게 쏟아냈다.)

전문가 중의 전문가가 해주는 대학병원의 채혈은 오히려 아프지 않다.

전문가가 해주는 유방촬영검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 무지 아프다.

오늘은 초음파 검사해주는 의사 선생님의 방식이 독특하고 꼼꼼했다.(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나는 가급적 초음파 검사할 때 눈을 감고 있는다.

몸에 힘을 빼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고 검사자의 표정에서 무엇인가 정보를 얻어내려고 하는 내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이기도 하다. 눈을 뜨고 있으면 나의 두려움이 보일것 같아서이다.


검사를 마치고는 같은 대학병원의 두 곳을 방문했다.

한 곳은 호흡기를 달고 2주전부터 동생이 입원해 있는 3층 내과계 중환자실이다.

오늘은 면회가 되지 않는 날인 것을 알고 있지만

내가 밖에 있다는 것을, 매일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동생이 알것 같았다.

그곳에서 멍하니 전광판에 표시된 동생의 이름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다음으로는 연명치료거부 완료 확인을 위한 사무실을 방문했다.

갑자기 혹은 많이 아프더라도 연명치료를 하지 않으리라 이미 마음먹었었다.

아파서 고생하는 분들을 보면서이다.

장기 기증은 힘들더라도(내 장기는 사용할 만큼 사용해서 낡았다.)

연명치료에 일단 접어들면 중단이 하는것이 쉽지않음을 잘 알고 있으니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나의 각오이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로 나는 귀가를 서둘렀다.

돌아오는 길에도 혹시 싶어서 내비게이션을 믿어보았다.

또 별로 효과 없는 도로를 추천해주어서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질뻔 했으나

마지막 부분에서 안 막히는 좋은 길을 안내해주어 AI와 극적인 화해에는 성공했다.


대학병원에 갈 때만, 약을 탈때만 지나다니는 그 길은 오래 다녀도 조금도 익숙해지거나 친숙해지지 않는다.

그 곳에서 나는 이미 외삼촌, 어머니, 아버지를 보냈고

그 분들이 가시기 전까지 너무나도 고생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 보았다.

이제 다시 누군가를 보내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너무도 고생하고 있음을 이미 잘 알고 있다.

나을 수가 없다는 그 사실도 너무 잘 알고 있다. 환자도 환자 가족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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