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64

장마와 태풍의 차이점

by 태생적 오지라퍼

오늘 오후는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집을 나섰다.

점심때까지 쨍쨍한 것만 보고 아뿔싸 우산을 안 챙겼다는 것은 지하철에 타고서야 알았다.

3학년 날씨 수업하면서 여러번 이야기했다.

장마란 세력이 비슷한 두 개의 다른 기단들이 만나 그 자리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세력 다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정체 전선(그 자리에 오래 머물러있다는 뜻)이라고

장마가 끝날때까지는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이 생활의 지혜라고 거듭 이야기했건만

오늘 정작 내가 그러지 못했다. 가르치는 것과 생활의 불일치다.


다행히 일을 보러 가는 동안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생각보다 길어진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오기위해 지하철을 탔을때까지도 멀쩡했다.

항상 일이라는 것은 안심했을 때 벌어진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집까지는 한 블록 정도를 걸어야 하는데 비가 내린다.

지하철에서 내렸을때는 소나기는 아니었다.

아주 가느다란 비는 아니지만 저 정도라면 비를 맞고 충분히 집까지 걸어가는 것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아주 오랜만에 비를 맞고 낭만적으로 걸어가보는거지 뭐.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바로 옆에 편의점도 있었는데 말이다.

가방에 안경도 벗어넣고(안경이 뿌옇게 되고 빗물이 떨어지는 것이 더 힘들다.)

휴대폰도 가방 깊숙이 넣고는 (예전에 휴대폰 충전기 꼽는 부분에 빗물이 들어가 고생한 적이 있다.)

누가봐도 여유롭게 비를 즐기듯이 걸었다.

그런데 집까지의 거리 1/5을 남겼을 때 미친 듯이 폭우가 쏟아졌다.

이 폭우속에 걷는다면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 딱이었다. 미끌어질까봐 뛸수도 없다.

지난번 폭우에 미끄러져서 발과 골반뼈를 다쳐서 꼼짝 못하게 된 지인 생각이 순간 들었다.

할 수 없이 어느 문닫은 상가 건물 입구에서 비를 피하게 되었다.

혹시 버리고 간 우산은 없는지, 머리를 가려줄 비닐은 없는지를 살피면서 쏟아지는 비를 보았다.

다시 조금 잦아들때까지의 시간은 5분 남짓이었는데 멍하니 영겁의 시간을 보내는 듯 했다.


이렇게 많은 양의 비를 맞고 걸어다녔던 경험이 딱 한번 있었다.

대학교 3학년때 수학 여행이었다.

나는 그때도 오지라퍼였기에 과대표를 하고 있었고 과 친구들은 제주도로 수학 여행을 가고 싶어했다.

그때만해도 다들 비행기도 못타봤고 제주도도 못 가본 곳이었다.

그래서 희망지로 제주도를 정했으나 교수님들은 제주도는 해외라면서 안된다고 하셨다.

나는 교수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매우 곤란한 처지가 되었으나 내돈내산인 관계로 제주도를 강행했다.

제주도 입항은 목포에서 새벽배를 탔다.(무지하게 배멀미를 했다.)

올때도 배를 타고 나오는 것이 계획이었는데 태풍이 몰려왔다.

그래도 어떻게 온 제주냐고 하면서 한라산 등반을 비를 뚫고 시작했다.

물론 중반에 포기하기는 했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니 조금은 낭만적이었고 많이도 무모했다.

그리고는 도저히 배는 안될 것 같아서 부랴부랴 우리 인생 첫 비행기를 예약했다.

공항에서 미친 듯이 뛰어서 탑승에 겨우 성공했는데(다들 힘들어서 첫 비행기에서 모두 잠만 잤다.)

우리가 탄 그 비행기를 마지막으로 제주에서 서울행 비행은 모두 결항되었었고

교수님들은 애가 엄청 타셨다고 이야기를 전해들었으며

그 이후로 나와 우리동기들은 교수님께 오랫동안 찍혔었다.


태풍은 장마전선과는 다른 경로로 발생한다.

태풍은 열대지역에서 발생하는 사이즈가 큰 저기압의 형태이다.

열대의 따뜻한 해류에서 많은 양의 에너지를 받아 증발한 수증기가

강한 상승 기류의 힘을 받아 강한 비바람을 동반하여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큰 적란운과 난기류를 동반하므로 요란한 천둥, 번개, 우박을 동반하게 된다.

또 장마전선은 초여름에서 여름 기간에, 태풍은 발생에 정해진 기간은 없다. 가을에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 비는 절대 태풍의 영향이 아니고 장마전선의 영향이다.

이 내용은 개학하면 중 3 첫 번째 시간에 수업할 내용이다.

그리고 단원의 마지막은 기상자료를 분석하여 나만의 일기예보 멘트를 작성하고

실제로 기상캐스터가 되어보는 발표 수업이 진행된다.

아마도 그들의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기상캐스터 역할놀이일 것이다.

이렇게 방학에도 나는 2학기 수업을 준비한다.

교사의 방학은 41조 연수라는 명칭을 갖는다.

항상 학습자료 수집과 수업준비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