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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한분 뿐인 이모와 고모

고생많으셨습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나는 이모와 고모가 각각 한분씩 계신다.

우리 엄마는 그 시대에 지극히 일반적인 3남 2녀 중 둘째,

아버지는 그 시대에 보기 드문 철저한 가족계획을 한(?) 1남 1녀 중 장남이었다.

지난 주 토요일 부산 요양병원에 계시던 고모가 돌아가셨고

어제는 일산 요양병원에 계시던 이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왔다.

이제 나의 부모님 대 나이의 분들은 모두 돌아가실 나이가 된 것이다.

그리고 어르신들에게는 여름과 겨울이 특히 버티기 힘든 시기임에 틀림없다.

(나도 올 여름 이리 힘든데 오죽 하시랴)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시아버지는 모두 추운 겨울에 가셨다.


나에게 더 친숙했던 분은 고모이다. 더 멀리 사셨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얼마전까지도 하나뿐인 동생을 보고 싶다고, 부산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셨었다.

고모는 명절때마다 우리 집에 제사지내라고 큼지막한 생선들을 싸다 주시고

그 맛난 장게김치(대구아가미젓갈과 작은 깍두기를 함께 무친 감칠맛 극치의 김치이다.)도 담아다 주시고

아들 녀석에게 볼때마다 잘 생겼다 칭찬도 해주시고 용돈도 쥐어주셨다.

대학 합격 후 혼자 내려간 부산 여행에서 바닷가 옆에서 맛난 회를 사주신 기억은 오래토록 남아있다.

내 생애 첫 회를 먹은 날이었다.(미끄러운 촉감이 놀라 몇 점 먹지도 못했지만...)

나의 아들 녀석도 대학 합격 후 친구들과 부산 여행을 갔었더랬다.

아들 녀석과 그 친구들에게도 고모는 비싼 횟집에서 회를 한턱 쏴주셨었댄다.

(아들 녀석의 어깨가 뿜뿜 올라갔었다고)

아들 녀석도 부고를 듣고는 곧장 부산 내려가는 비행기와 기차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같이 가겠다면서...

그런데 안타깝게도 주말이라 부산행 비행기와 기차표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내려가는 표는 어찌 어찌 있는데 일요일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표가 없다.

그렇다고 피서철의 절정에 자동차로 내려가기도 힘들었다.

하물며 월요일에 중요 행사가 있는 우리 둘 모두가 함께 움직이기는 더욱 불가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내 컨디션이 아직 장거리를 당일에 다녀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할 수 없이 부조금만 보내고 부산에 갈 일이 있을 때 묘지를 찾아뵙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올해 오래동안 아팠던 고종사촌동생이 먼 길을 떠났을때 고모와 고종 사촌들은 만났었고

한 해에 두 번 장례식을 치룬다고 이번에는 가족장으로 한다는 연락에 못가보는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다행인지 그 일요일, 부산역 주변에서는 기차 사고로 연착 및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 아수라장에 끼이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이라고 고모의 보살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목요일, 이모의 부음을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 때 이모네집에 놀러간 기억으로(아마 한 번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모는 음식 솜씨가 그닥 좋지 않았고, 에너지가 별로 없는(아마도 무서운 이모부의 카리스마에 눌리신 듯도 했다.)

기도를 열심히 하시는 사람, 좋은 웃음소리의 소유자셨다.

어린 내가 보기에 이모와 엄마는 친한 자매라고는 이야기하기 어려운 정도의 딱 그정도만 교류만 있었다.

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남편들의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달랐으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은 것은 지금 생각이다.

출장간 아들 녀석에게 이모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톡을 보냈더니

이모할머니가 누구? 얼굴이 기억이 안 나는데? 라는 답이 올 정도이니 별다른 교류가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일산은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곳이니 오늘 오후에 다녀오려 한다.

이제는 길거리에 다니다가는 얼굴도 알아보기 힘든

이종 사촌들에게 오랜만에 인사도 할 겸, 나의 부모님 장례 때 감사 인사도 할 겸 말이다.


나의 고모와 이모는 성향이 정 반대셨다.

오지랖이 넓고 경상도 사투리를 세게 쓰고 자신의 의사표현이 과할 정도로 강하셨던 고모(그러나 내면에는 아들을 먼저 앞세운 비극의 소유자셨다.)

항상 호호 웃기만하고 아멘 아멘과 주님만을 내세우셨던 다소곳하고 여유있던 충청도 양반 체질의 이모

정 반대 성향의 두 분이 이제 하늘에서 천국 입사 동기로 만나셨을까? 서로 사돈인 것은 알아보셨을라나...

어느 한 명의 인생도 알고보면 대충인 것은 없다.

모두가 최선을 다한 것이고 이제 쉬러 가신 것이다.

두 분의 영면을 기도한다.

이제 한 분 남은 어르신인 시어머니께는 어제 안부 전화를 드렸었다.

목소리가 조금 안 좋으시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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