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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72

더위와 추위 사이

by 태생적 오지라퍼

나는 추운 것을 제일 싫어라 한다.

추우면 머리까지 얼어붙는 것 같고 밖에 나갈 엄두도 나지 않으며 마냥 겨울잠 자는 곰 모드가 된다.

더위는 무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이전까지는 없었다.

남들에 비하면 땀이 많이 나는 체질도 아니고

한 여름에도 찬물 목욕을 못하며

물이나 음료수를 많이 먹는 스타일도 아니다.

물론 더운 곳에 가면 입술에 포진이 생겨서 필러를 맞은 사람이 되고

피부가 금방 빨강게 타고 어린아이 땀띠처럼 튀어 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추워서 덜덜 떠는 것 보다는 더운게 백배 낫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리고 더울때는 냉면, 삼계탕, 비빔국수, 빙수, 냉모밀이라도 먹는데

추울때는 국밥종류 밖에는 먹거리도 생각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래저래 나는 겨울보다는 여름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지금까지는...


올해 들어서 더워도 너무 덥다는 느낌을 여러번 받았다.

아들 녀석을 가졌던 만삭 임산부때 더워서 잠을 못자고

밤에 쥐가 나고 숨이 안쉬어지던 그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른다는 이야기도

더워서 입맛을 잃었다는 이야기도(코로나 19 후유증이라 더 심할 수도 있다.)

더위에 숨이 막힌다는 이야기도 무슨 뜻인지 올 여름이 되니 확실하게 알겠다.

지구온난화 수업 때 등장하는 <올해가 내 인생 중 가장 시원한 한 해>라는 글귀가 이렇게 와닿을 수가 없다.

가끔 엄마에게 덥다고 투덜투덜댈때마다 들은 이야기가 있다.

“더위 한 열흘만 참으면 된다. 수박과 복숭아 먹고 미숫가루 타먹고 버티면 가을 바람이 불게 되어 있다.”

그런데 엄마는 모르고 가신게 있다. (모르고 가신게 정말 다행이기는 하지만)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덥다고 투덜대는 아이들에게 우리 엄마처럼 이야기하면서 달랠 수는 정말 없게 되어버렸다.


오늘도 나의 점심은 물냉면이었고 갈비만두 3개도 함께 했다.

(일평생 이렇게 많은 물냉면을 먹어보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물론 물만 홀짝거리면서 먹고 면은 얼마 먹지 못했지만말이다.)

저녁은 신김치 달달볶고 깻잎 양념장 재워둔것 꺼내고 스팸 한조각 굽고 참치캔 따고 오뎅과 호박을 길게잘라 매콤하게 볶아준 밑반찬과 함께 하는 찬물 말은 밥일 예정이다.

잘말린 꾸덕한 보리굴비 하나 구우면 금상첨화이겠으나 아쉽게도 없다.

저녁에 모임있다는 아들 녀석때문에 오늘 예정인 보쌈은 다음 주로 미루어두었다.

그 사이에 포도 10알도 먹었고 복숭아 반쪽도 먹었으며(수박은 너무 커서 살 수가 없는게 단점이다.)

더위에 나보다 더 지쳐보이는 나의 고양이 설이와 낮잠도 잠깐 즐겼지만

아직도 더위가 남아있는 집밖으로 나서는 일은 무섭기만 하다.

정말 내년에는 올해보다도 더 더울까?

지구온난화가 이리 무서운 것인지 아마도 모두가 뼈속 깊이 느끼는 올해 여름이다.

그나저나 이번 주말 나들이는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이다.

어제 나갔다가 거의 기절과 탈진 직전까지 갔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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