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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첫 백수를 준비하며

연습만으로도 힘들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대학 졸업식날 교사로 발령을 받았으니 나는 하루도 백수로 살아본 적은 없었던 셈이다.

그러니 방학 기간보다 더 오래동안 쉬어본 적도 당연히 없다.

학교 창호와 화장실 공사관계로 올 여름방학은 길다.

다른 학교는 대부분 개학을 했고 개학 후 코로나 유행과 여전히 더운 날씨로 고생을 하고 있다.

이렇게 오래 쉬는 것이 오랜만이라 마치 정년퇴직 이후 백수의 삶을 미리 체험해보는 듯 한 날들이다.

물론 코로나19 이후 회복과 재활 기간으로 주로 사용되고 있지만 말이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있는데 나의 성향상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집을 나서는 것이 안되는 것을 보니 말이다. 너무 더워서그런지도 모르겠다만...


어제는 이모 장례식장을 갔다가 5년 만에 열리는 과학교사 모임에 다녀왔다.

과학창의재단과 두산연강재단이 함께 하는 올해의 과학교사상이라는 시상이 있다.

열심히 활동하는 과학교사들을 격려하고자 만들어진 상인데(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과학교사들에게 주는 노벨상이라고나 할까)

나는 대한민국 1호 미래학교를 열심히 만들고 있던 2015년에 이 멋진 상을 받았었다.

그 사이의 나의 노력을 인정받은듯한 느낌에 한동안 많이 기뻤고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의무감도 생겼었다.

물론 그 상을 받지 않았다고 내가 대강 할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상이 나에게 어느 정도 동기부여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상을 받는 전국의 과학교사들은 두산연강재단이 지원하는 일본 연수도 가게 되는데

그 연수 또한 세심한 일정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었다.

연수 후 소감문을 모아서 책을 발간하면서 만남의 시간을 갖는데

이때는 그동안 그 상을 수상한 모든 선생님들을 초대하여 만남의 장을 만들어준다.

코로나 19로 그간에 미루어왔던 책 출판 기념회가 바로 어제 오후였다.


2015년에 상을 받은 동기들을 만나는 것도

그 이전과 이후에 상을 받은 아는 선후배들을 만나는 것도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었지만

80이 넘은 연세에도 꼿꼿하고 돈이 되지도 않는 과학교사를 지원하는 사업(이번년도부터는 수학교사도 연수에 포함시킨다고 하셨다.)에 열의가 가득한 이사장님을 뵙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이렇게 멋진 어른(?)들을 보는 것은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정년을 앞두고 있으니 이제 대강 대강 마무리를 하여도 누가 뭐라 하지는 않겠지만

나에게 주어지는 일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고 내가 알고 있는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멋진 어른이 나도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봉사활동이 되는 것은 아직은 싫다.

많은 돈을 받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소정의 노력 대비 수당 지급은 꼭 필요하다.

“돈 받으면 프로다” 라는 말은 돈을 안받게 되면 혹은 터무니없이 작은 돈을 받게 되면

일을 대강 대강처리해도 별로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나는 적절한 돈을 받고 최대한으로 나의 역량을 발휘하는 일을

최소한 3년 정도는 더 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욕심이다.

그러나 내 계획대로 나의 희망대로 되는 것이 세상일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80이 넘어서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두산연강재단의 이사장님과(물론 돈이 아주 많으신 분이시고)

80이 넘어서도 직접 펑고를 쳐주시고 이 더위에 꼿꼿이 서서

네 시간 이상 걸리는 초접전의 최강야구 경기를 지휘하고 계시는 김성근 감독님(물론 돈 받고 하는 일이지만)이 나의 노년 롤 모델이다.

아참 우리 아버지도 늘상 그런 말을 하시기는 했다.

“죽기 전 날까지 일하다가 가고 싶다. 그것이 행복한 것이다.”

물론 그런 행운은 오지 않았고(4년 정도 누워계시다가 가셨다.)

아버지는 입과 머리로 일을 하셨지 남들보기에 멋진 결과를 내시지는 못하셨지만

그래도 그 마인드를 나는 또 닮았나보다.

일하지 않는 날들은 참으로 무미건조하다. 이번 방학에 해보니 더욱 그렇다.

남은 한 학기가 그래서 더더욱 소중하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내 생에 나에게 주어지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이 무엇이든 그것은 행운이며 감사한 일일것이다.

일할 수 있다는 것은 건강이 허락된다는 것이며 맛난 밥맛과 푹 잘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직은 백수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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