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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과 발톱

숨기고 싶은 것들

by 태생적 오지라퍼

요즈음은 자꾸 두 가지를 비교하는 주제의 글을 쓰게 된다.

이것도 이 시기의 내 무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니 그대로 받아들여본다.

여름과 겨울, 더위와 추위, 아버지와 아들 시리즈에 이어서 오늘은 손톱과 발톱 이야기이다.


먼저 한번 언급했던 손톱이야기이다.

어려서 욕구불만과 긴장한 상황이 있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물어뜯었던 나는 그래서인지 손톱 길이와 모양에 예민하다.

엄밀히 말하면 조금 길어진 손톱 밑의 더러워진 상태를 참지 못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옛날부터였는데) 손톱에 가로줄무늬가 있다.(건강에 유의미한 사인인지는 알 수 없다.)

손톱과 관련된 결정적인 계기도 있었다.


중학교 1학년. 첫 번째 음악실로 이동해서 수업하는 음악 시간이었다.

나는 그 반 회장이었고(회장이 된지 아마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음악실이 어디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며

어찌저찌하여 찾아간 음악실에서(모든 학생들이 다 모였더니 수업종이 친 다음이었다.)

나는 회장이라고 수업 시간에 늦게 오고 제대로 번호대로 좌석에 앉아있지 않았다는 죄로(?)

음악 선생님에게 인생 첫 따귀를 맞았다.

음악실은 어디이고 음악실에서는 번호대로 어떻게 앉아야한다는 사전 안내는 물론 없었었다.

불이 번쩍남과 동시에 음악 선생님의 긴 손톱에 얼굴이 할퀴어져서 피부가 패이고 피가 흘렀었다.

나는 아픈 것보다도 창피하고 분한 마음이 더 컸고 그 날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는 엄마에게는 어디에 스쳤다고 대충 둘러댔었는데 주변에서 어떻게 알게 되셨나보다.

항의하러 학교에 가려다가 간신히 참았다고 많이 우셨다고 나중에야 전해들었었다.

나는 그때의 충격으로 절대로 손톱을 기르지 않겠다 생각했었다.

그 음악 선생님의 긴 손톱과 분홍색 매니큐어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손톱깍기를 항상 가지고 다니며

항상 짧고 정갈한 손톱을 추구해왔고

그런 관계로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한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몇 번 칠했다가도 어울리지 않아서 다시 지운 것 같다.

결혼식 날에도 물론 안 칠했다.


발톱은 손톱과는 다른 이유가 존재한다.

나는 발이 크고 두툼하여 항상 나의 발을 숨기고 싶었다.

내 뇌리에는 작고 여린 발이 여성성을 나타낸다는 묘한 생각이 언제부터인가 자리잡고 있었나보다.

지금은 발이 큰 여자들도 많은데 이전에만해도 245 크기의 여자 신발은 몇 개 없었을 때이니 그럴만하기도 했다.

그리고 엄지 발톱은 살을 파고 들어가는 내성 발톱이라(그것도 아버지를 닮았다.)

병원에서 발톱 일부를 잘라내보기도 했고(심하게 파고 들어서 곪은 상태가 되었다.)

발톱이 통째로 빠지기도 해서 삐툴삐툴하게 나기도 했으니

발과 발톱이 드러나 보이는 샌들을 신는 것은 나에게는 부담감이 존재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발가락을 보여주는 일이 마치 배꼽을 보여주는 것 만큼이나 나에게는

창피하고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50이 넘어서야 여름 더위에 발가락도 너무 힘든 것 같아서 처음으로 발가락이 드러나는 샌들을 신었더랬지만 지금도 가급적 앞 코가 닫힌 신발을 선호하는 편이다.

어느 여름 무슨 일이었던가 엄지 발톱이 까맣게 변해서(아마도 무엇을 떨어트렸었던가보다)

그 까만 발톱을 커버하려고 페디큐어를 바르고 샌들을 용감하게 신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까매진 발톱에 바른 색과 멀쩡한 발톱에 바른 색이 같을 수는 없는 법.

아픈 발톱만 더 강조되어 보였고(물론 나에게만 보였을거다. 다른 누가 내 발톱색에 신경을 쓰겠냐만은)

역시 나는 매니큐어나 페디큐어와는 친할 수 없는 관계임에 틀림없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하나뿐인 아들 결혼식날에도 바르지 않을 계획이다.


이제 나이가 드니 손톱과 발톱을 정리하는데 자꾸 안경을 벗게 된다.

아직 돋보기를 쓰지는 않지만(돋보기는 은퇴 후 사용할까 한다. 돋보기 쓰는 선생님으로는 기억되고 싶지 않다.) 자주 안경을 벗어야 더 잘 보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어제는 발톱사이에 나를 괴롭히는 티눈과 굳은살을 정리하려다가 맨살을 자를뻔한 작은 사고도 있었다.

아마도 친구들이 네일숍을 다니는 이유 중에 한 가지인가보다.

내 몸인데 내가 관리하기가 어려워지는 일이 생기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런데 노안이 되면서 자글자글해지는 주름이 잘 안보이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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